[단독] 버스업자들 탁상행정에 '분통'…"범법자 될 판"

"차량내 공기질 측정해 올해안으로 보고하라"는
환경부 '실내 공기질 관리법 시행규칙'

99곳 업체중 95곳은 기준·비용 문제로 측정기계조차 구비못해

비용 2500만원인데 과태료 200만원…"그냥 과태료 낼 판"
환경부가 올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실제 현장과는 동떨어진 ‘부실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7일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들이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환경부가 올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규칙’이 측정환경·기준 등에 있어 실제 현장과는 동떨어진 ‘부실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지하철, 고속철도(KTX 등), 고속·시외 버스 등의 실내공기질을 깐깐하게 관리하겠다”며 운송사업자들에게 보유차량의 20%에 해당하는 차량(최대 50대)의 차내 공기질을 1년에 한번 이상 측정해 보고토록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무리한 측정기술·비용을 요구하는 등으로 올해가 2개월여 남았지만 99개 사업자 중 공기질을 측정해 보고한 업체는 단 4곳이었다. 나머지 업체 대부분은 아직 공기질을 측정할 기계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99개 업체 중 95개 곳 위법 사업자 될판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환경부와 환경관리공단 등을 통해 운송업체들의 공기질 측정 실제 현황을 파악한 결과, 4월 시행이후 현 시점까지 99개 업체 중 공기질을 측정해 보고한 곳은 대전도시철도공사, 광주철도공사, (주)SR, 우이신설경전철운영(주) 등 철도회사 4곳 뿐이었다. 나머지 95곳 업체는 대부분 고속·시외버스 업체들로 현재로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95%의 업체들이 아직까지 측정값을 보고하지 못하고 있는건 이유가 있다. 환경부는 공기질 측정을 요구하며 전문 대행 업체에 맡기거나 혹은 운송사업자들에게 직접 기계를 구매해 자체적으로 측정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두 방식 모두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고 항변한다. 한국환경연구소에 문의한 결과 측정은 차량이 출발해 목적지에 도착할때까지 5분 간격으로 전문가가 기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기록·통계처리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기술력을 요구했다. 당연히 비용도 높았다.

문의 결과 대행업체를 통해 측정하는 경우 1차량당 2시간 측정에 40만~5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대다수 업체들이 측정해야하는 기준인 50대로 보면 한 업체당 최소 25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대형 고속버스 회사 관계자 A씨는 “가뜩이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월급도 주기 힘들 정도로 절대 다수의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행업체를 사용하라는건 말도 안되는 요구로 이미 선택지에 없다”고 했다.

결국 운송사업자들은 자체적으로 기계를 구매해 측정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기술과 기계를 요구하는 탓에 업체들은 아직까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 말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내 공기질 측정 위반 1차 위반의 과태료가 200만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대행업체를 이용해 25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내느니 200만원의 과태료를 내고 위법을 하는게 낫다는 판단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심지어 가짜 수치 보고해도 검증 못해

취재 결과, 더 심각한 점은 측정값을 한국환경공단에 가짜로 보고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업체들은 한국환경공단이 관리하는 홈페이지에 직접 측정값을 입력하면 되는데, 이 과정에 제대로 갖춰진 검증절차는 없었다. 김웅 의원실이 한국환경공단에 “가짜로 입력해서 올리는 경우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라고 묻자 공단도 지금으로서는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실한 부분은 또 있었다. 시행규칙은 실내 공기질을 언제 측정해야하는지에 대한 제대로된 기준을 갖추지 않고 있었다. 시외버스의 경우 중앙좌석 중심·옆자리, 뒷자리 빈자석 등에서 측정하라는 등의 규정은 있었지만 정작 1년 중 언제 측정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은 없었다. 계절마다 공기질이 크게 다른데도 관련 기준은 없었다.

총체적인 부실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환경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행규칙을 만들어 놓고 현장 상황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김웅 의원실이 환경부에게 ‘시행이후부터 지금까지 불시 오염도 검사를 하거나 환경점검을 한적이 있느냐’고 묻자 환경부는 “대중교통차량에 대한 오염도검사 결과를 취합 중이다”라는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놨다.
김웅 의원(사진)은 “이번 환경부의 조악한 시행규칙은 ‘공기를 깨끗하게 해야한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운송사업자들을 범법자로 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장상황에 맞는 법이 될수 있도록 보완·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그동안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측정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 등을 사업자분들과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시행 추이를 살펴보고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