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쟁' 美 판결 또 연기…한숨 커지는 LG화학·SK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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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TC, 12월10일 최종 결론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2차전지(배터리) 기술 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최종 결정을 또 미뤘기 때문이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시장을 놓고 각국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 간 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길어지는 분쟁…소송비용 커져
최종 결정 전엔 합의도 어려워
ITC는 26일(현지시간)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최종 판단을 오는 12월 10일로 6주 더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ITC는 당초 이달 5일에서 26일로 최종 판결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또 연기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두 회사는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 측은 “ITC가 이번 사건의 쟁점을 깊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예비결정에서 조기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두 차례 연기가 최종 판단을 바꿀 ‘변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LG화학 측은 “코로나19로 ITC가 다른 결정들도 미루고 있다”며 “예비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이후 ITC에 올라온 사건 중 연기된 사례가 14건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업계에선 ITC의 결정 연기가 두 회사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은 오는 30일 배터리 사업 분사를 위한 주주총회 이전에 최종 결정이 나오길 내심 기대했다.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주와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ITC의 연기 결정으로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SK이노베이션으로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ITC가 SK이노베이션에 최종 패소 판정을 내리더라도 미국 대통령은 60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3조원을 투자한 SK이노베이션은 일자리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대선 이후로 결정이 미뤄지면서 이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송 장기화로 소송 비용은 더 불어나게 됐다. 양사는 ITC 제소건 외에 특허 침해와 손해배상 청구 등 10여 건의 소송을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쓴 소송 비용만 3000억~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ITC 최종 판단 이전에는 합의도 어려운 상황이다. 양사 간 ‘갈등의 골’이 워낙 깊고 ITC 결정 없이 합의하면 책임론도 제기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ITC 최종 결정을 토대로 협상이 이뤄져야 최고경영자(CEO)의 배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