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일 한번 벌여보자"…고대·성대 합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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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대 前 고려대 총장의 회고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 고려대와 성균관대 재단을 합병해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고대 100주년 기부금 550억 쾌척하며
"초일류 대학 만들자" 재단통합 추진
2005년 명예철학박사 수여식 때
공식화하려다 학내 반발에 '불발'
2003~2006년 고려대 총장을 지낸 어윤대 고려대 명예교수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의 사학을 만들자는 이 회장의 제안에 따라 총장 재직 시절 재단 합병 프로젝트를 2년간 준비했다”고 밝혔다.재단 통합 얘기가 나온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 교수는 “당시 고려대 100주년을 앞두고 이 회장이 기부금 550억원을 쾌척하면서 ‘이왕 일을 벌일 것이라면 세계 일류 대학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회장은 국내 경쟁을 넘어 세계적인 초일류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두 대학의 재단 통합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고려대는 고려중앙학원이, 성균관대는 삼성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합쳐 재단 한 곳이 두 대학을 모두 맡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10개 대학을 통합 운영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대(UC) 재단과 같은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자는 취지였다.
어 교수는 “고대와 성대가 교류하고 상호 보완하도록 계획했다”며 “두 학교 모두 삼성 지원을 받을 것도 자명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전통적으로 문과 계열이 강한 고려대와 이공 계열이 강한 성균관대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는 게 어 교수의 설명이다.두 재단의 통합은 그러나 학내 반발 등에 부딪혀 무산됐다. 고려대가 2005년 이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자리에서 재단 통합 방침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학생들의 반대 시위로 논란이 일면서 흐지부지됐다는 설명이다.
어 교수는 “이 회장이 극구 사양하는데도 굳이 명예박사 학위를 권했다가 이런 일이 발생해 면목이 없어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완성 직전까지 갔던 두 대학의 통합이 막판에 엎어진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