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이 뭐길래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30년만에 금융세제 분야의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1991년 비(非)상장주식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거래세 중심의 금융투자소득 과세 체계를 양도소득세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1년에 몇 %의 수익률을 올리든 관계없이 거래할 때에만 세금을 떼온 제도는 주식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유인책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금융투자 세제 선진화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역시나 '개혁'을 외치는 정부여서 그런지, 이번에도 용단을 내렸다. 그러나 양도세 제도 개편 과정에서 그동안 급속히 변화된 시장참여 주체들의 정서, 변화된 힘의 관계를 제대로 읽지 못한 듯하다. 대주주 기준을 만들어 예외적으로 양도차익을 과세하던 방식을 '2023년 일괄 양도세 과세'라는 일정상 목표로 전환시켜가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공무원식 발상, 사고방식이 드러나 힐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부는 3단계 과정을 거치는 게 맞다고 봤다. 지금은 '코스피시장 지분율 1%(코스닥 2%) 이상 또는 보유액 10억원 이상 주주'만 주식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1단계(2021년)에선 '코스피시장 지분율 1%(코스닥 2%) 또는 보유액 3억원 이상 주주'로 과세 대상을 넓힌다. 2단계(2022년)에선 대상은 같은데, 세율을 기존 20~30%에서 20~25%로 소폭 내린다. 마지막 3단계(2023년)는 모든 상장주식 주주들에게 양도세 과세를 일괄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생산과정과 금융(투자)제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런 프로세스가 낯설지는 않다. 한마디로 2023년 일괄 양도세 과세를 위해 '연차별 접근'을 하는 것이다. 세무당국의 과세를 위한 기술적 접근 방법이기도 하고, 행여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하고, 납세자들이 적응할 시간적 여유도 주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이게 '동학개미 전성시대'를 맞아 난타당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에 한번에 바꾸든지 하면 될 일을, 세금을 내야 하는 당사자들이 원치도 않는 단계적 적용을 한다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게 이들 정서다. 단계적 적용이든 뭐든, 당장 내년부터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싫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이 표출되면서 자상한 어버이같이 시장참여자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라고 여겨졌던 연차적 시행 계획이 '틀린 발상일 수 있다'란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난다. 정책 당국이 시장을 규율하고 아젠다를 제시하고, 그게 최고의 선(善)으로 간주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 없어. 그냥 2023년 일괄 적용하면 되지' 이 한마디에 두손 들고 마는 형국이다. '맞아. 그러면 되지…'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금융투자시장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여러 모로 낙후된 게 사실이다. 금융투자 역사가 짧고, 그래서 금융투자 회사의 업력이 짧고, 장기·가치투자 등 수익률을 지키는 여러 황금률들이 아직은 투자문화로 안착돼 있지 않다. 그래도 굵직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던 금융투자 역사 속에서 관치의 폐해와 '몰빵'의 기억, 해외펀드 잔혹사 등이 교차하면서 시장이 성숙할 기회는 없지 않았다.

'베이비 스텝'처럼 작지만 한발 씩 떼어가는 중에 올해는 특히 많은 사건과 이슈들이 불거졌다. 과거처럼 '개인투자자 전성시대'가 꽃을 피우다 쓴 맛을 보고 퇴조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관의 '오만함'을 꺾으며 금융당국의 관심까지 불러모으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체감케 한 계기가 바로 주식양도세 대주주 요건 변경을 둘러싼 논란이다. 공무원식 사고와 접근방식, 정책 프로세스에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겠나. 시장을 다시 들여다보고 지혜를 짜내야 하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심정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또 하나, 소셜네트워크의 위력과 함께 실체적 힘을 보여준 동학개미라는 새로운 현상과 함께, 그 앞에 속된 말로 절절매는 정치권력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금융투자 세제나 제도와 관련해 정부 정책 방향과 일정에 가타부타 했다든지, 아니면 정책조율을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달 초 양도세 대주주 기준 논란에 대해 "동학개미로 불리는 투자자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다"며 "당정협의를 통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동학개미가 같은 여의도(증권가와 국회)를 기반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치인들도 관심 이슈와 키워드로 삼아 동향을 체크해보는, 정치이슈까지 될 수 있는 영향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생활이 정치권의 이목을 모으고 정책 조율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동학개미의 힘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족 합산 과세만 배제하고 '인별(人別) 3억원 기준'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지만, 이 또한 '홍남기의 고집'이란 키워드로 희화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대주주 기준을 '인별 5억원'으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부부가 같은 종목을 5억원씩 갖고 있다가 매도한다면 합쳐서 10억원 매도이고, 이 경우 기존 대주주 요건이 변경되지 않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어쨌거나 경제문외한인 것은 분명해보이는 여당 원내대표도 속된 말로 숟가락 들이밀고, 당 지지율과 여권 지지층 감소를 두려워하며 동학개미에 반응하는 게 요즘 한국의 금융과 정치권 모습이다. 선배들의 고고한 정책 프로세스를 변함없이 수십년간 시장에 들이먹이는 관료들도 놀랍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장에 화답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생경하기만 하다. 뭐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정말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