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어린 사서가 지켜낸 존엄

리뷰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2차 세계대전의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제가 이 이야기에 이르게 된 계기는 홀로코스트 탐구가 아닌, 독서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장편소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북레시피)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소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31블록에 실존했던 작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다. 열네 살에 수용소에 끌려와 이 도서관의 사서(司書)가 된 유대인 소녀 디타 크라우스(사진)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을 담아냈다.이야기는 한 수감자가 크라우스의 소설 속 인물인 ‘디타 아들러’에게 감시의 눈을 피해 여덟 권의 책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31블록 도서관은 말만 도서관이지 책이라곤 여덟 권뿐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이었다. 디타는 감시와 역경 속에서도 여자 아이들과 책을 숨겨놓고 비밀리에 공유했다.

소설은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디타가 유대인 지도자 허쉬를 만나면서 공포를 뛰어넘어 새로운 용기를 얻는 과정을 경이롭게 비춰낸다. 허쉬는 여덟 권의 책을 바탕으로 수용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든다. 선생들은 책과 함께 지리와 역사, 음악을 가르쳤다. ‘살아있는 도서관’이자 ‘인간 책’ ‘다리 달린 학교’가 만들어졌다. 허쉬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치가 얼마나 많은 학교 문을 닫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멈춰서서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듣고, 그러면 그게 학교지요.”31블록 도서관은 당시 나치의 악랄한 행위에 대적할 수도 없었고, 가스실 학살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상에 만들어 낸 가장 끔찍한 지옥의 한가운데서 헌신적으로 책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작은 희망의 틈을 열어 보인다. 공유와 관용, 평화의 가치뿐 아니라 내면을 살찌우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존재하고 이어져 왔음을 또박또박 전달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