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두 번 울리는 불량 임시주택…"춥고 불에 취약"

구례군 임시주택 설계와 딴판 규격 미달·저가 자재 사용 물의
군 "재난 상황서 확인 어려워…전수조사", 업체 "기한 촉박 수급 어려워…군청과 협의"
전남 구례군이 집중호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을 위해 설치한 임시주택이 부실 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설계와 전혀 다른 규격 미달 자재를 사용해 화재 등 안전에 취약한 것은 물론 겨울을 앞두고 난방 문제도 심각하다.

29일 구례군과 업계에 따르면 군은 8월 말 조립식 임시주택 50채를 화순과 영암 소재 업체 2곳에 25채씩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긴급 지원된 임시주택의 한 채당 납품가격(바닥 기초공사비 제외)은 3천만원으로, 모두 15억원의 국비가 투입됐다. 지난달 25일 납품된 주택은 24㎡(7평) 규모로 작은 화장실과 싱크대, 붙박이장, 벽걸이형 에어컨 등을 갖췄다.

문제는 설치된 주택이 시방서에 기재된 것과는 거리가 먼 규격 미달 또는 저가 자재로 시공됐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군 관계자 입회하에 회전식 시추기로 일부 조립식 주택 벽체를 확인한 결과 기초와 뼈대 역할을 하는 철제 골조는 규격품인 'ㄷ 형강'이 아닌 일반 철판을 절단해 썼다. 강도나 가격이 두배 이상 비싼 아연 강관 대신 일반 각 파이프를 사용한 것도 드러났다.

파이프는 설치한 지 불과 한달여 만에 녹이 슬고 있었다.

구조물에 규격 미달 자재가 쓰일 경우 주택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주택을 감싼 벽체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단열과 화재 예방 등을 위해 아연을 가공한 징크패널과 우레탄 이중 구조(200mm)로 설치해야 하지만 값싼 샌드위치 패널 150mm만이 들어갔다.

샌드위치 패널은 가연성(可燃性)이 큰 물질로, 대형 물류창고나 상가 화재 때마다 불을 키우거나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등 문제가 적지 않았다.

단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우레탄 패널은 불연성(不燃性)에다 단열 효과도 좋지만 가격이 샌드위치 패널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일부 주택은 벽체 두께조차도 규격에 미달한 것으로 알려져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리산에 둘러싸인 구례는 도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아 주택 단열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른바 '날림 시공'으로 올겨울 이재민들의 겨울나기가 우려된다.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아직 한겨울이 아닌데도 추워서 옷을 두 벌이나 껴입고 자고 있다"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집을 뜯어보지 않고는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시방서와 다른 값싼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시주택 설치, 검수 과정에서 구례군의 묵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공 업체에 자재 시험성적서, 납품확인서만 확인해도 손쉽게 벽체나 골조의 규격미달 자재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업체 관계자는 "공기가 촉박한 상태에서 우레탄 등 원하는 자재 수급이 안 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며 "군청과 협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구와 언제 협의를 했는지, 공문 등이 오갔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구례군 관계자는 "수해라는 재난 상황에서 자재 등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전수조사를 해 부실시공 여부 등 위법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