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북쉘프=사장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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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조원 빚에 파산한 회사를 되살려낸 78세 경영의 신2010년 1월 일본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열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한때 세계 최대 항공사였던 일본항공(JAL)이 2조3221억엔(2010년 환율 기준 28조5000억원)의 빚을 지고 도산했기 때문이다. 공기업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부실 경영의 폐해가 결국 터진 순간이었다.
그가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이유는?
당시 일본항공의 임직원은 4만8000명, 협력업체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포함해 수십만 명의 생계가 위기에 처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무너지면 안 그래도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일본 경제는 또 한 번 뒤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일본항공을 살려야만 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를 재건할 책임자를 물색하던 일본 정부는 교토에 은거하고 있던 한 노인을 찾아간다.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 몇 년째 후배 중소기업인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담은 책을 내면서 한가로운 생활을 보내던 78세의 노(老) 경영자였다.
담당 부처 장관은 물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까지 직접 나서 삼고초려한 끝에 그는 난파선의 선장 자리를 받아 들인다. ‘회사를 살린다고 해도 얻는 건 아무것도 없고, 자칫 일본항공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명성이 땅바닥에 떨어진다’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가 일본항공 회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세 가지. 일본항공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친다는 게 첫째, 구조조정 이후에도 남아있을 3만2000명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둘째, JAL이 무너져서 일본에 국적 항공사가 하나만 남게 되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게 세 번째 이유였다. 그가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요구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매일 나가 일할 수는 없으니 일주일에 3일만 일하겠다는 것과 임시직이니 급료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회사를 살린다고 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었다.
2010년 2월 그가 일본항공 회장에 취임하며 함께 데리고 간 부하 직원은 단 세 명이었다. 평생 그를 따랐던 50~60대 임원들이었다. 28조원의 빚을 지고 도산한 직원 4만8000명의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 투입된 인원이 그를 포함해 단 네 명뿐이었다.
2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일본항공은 도쿄증권거래소에 재상장하며 부활을 알린다. 2011년 3월과 2012년 3월 결산때 두 해 연속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면서 시작된 회사의 재건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물론 일본항공 부활의 모든 공로를 이 남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정부의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 그의 취임 전부터 예정돼있던 대규모 구조조정, 남아있는 직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경영의 신이라고 해도 회사를 되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아니었다면 일본항공이 이만큼 빨리 다시 날아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2013년 3월 일본항공 이사직에서 물러나며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의 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의 답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경영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기업의 리더는 더 강한 의지로 회사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투지 없는 경영은 안 됩니다. 자신의 회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훌륭하게 만들고자 하는 투혼을 불태워주십시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1959년 교세라를 창업한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으며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는 지금껏 44권의 책을 펴내며 일본과 전 세계에서 1500만부의 책을 판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하다.
올해 1월 출간된 '사장의 그릇'은 한국에 소개된 그의 최신작이다. 1983년부터 2019년 12월까지 36년간 중소기업 경영자 학습모임인 ‘세이와주쿠’를 이끌면서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들었던 질문에 그가 직접 답한다.
‘경직된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법이 있는가?’ ‘3D 업종의 직원들이 꿈과 긍지를 가지게 하려면?’ ‘능력이 각기 다른 간부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나이 어린 사장이 리더십을 잘 수행하려면?’과 같은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가는 방식이다.
교세라가 직원 8만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그는 항상 ‘우리 중소기업인들은’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며 동료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향한 애정을 보였다. 자신의 회사를 강하고 바르게 키우고 싶은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