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억 1주택자 재산세 줄고 4억 2주택자는 감면 '0원'

누더기 된 재산세

당정, 1주택자 세율체계 신설
다주택자와 차등 적용 검토
사진=연합뉴스
재산세가 종합부동산세처럼 다주택자와 1주택자에게 각기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체계로 ‘이원화’된다. 정부가 재산세율 인하 대책을 추진하면서 다주택자는 혜택을 배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치 논리로 세법이 ‘누더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정부 관계자는 “1주택자의 재산세를 깎아주려면 이들에게만 적용하는 세율 체계를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며 “1주택자는 인하된 세율을, 다주택자에겐 기존 세율을 적용하는 식”이라고 말했다.현행 재산세율은 △과세표준 6000만원 이하 0.1% △6000만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 0.15% △1억5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0.25% △3억원 초과 0.4%다. 보유 주택 수에 따른 차별은 없다.

하지만 정부는 중저가 1주택 보유자만 세율을 최대 0.05%포인트 깎아주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재산세 세율 체계의 이원화가 불가피해졌다. 정부 계획대로면 다주택자는 기존대로 0.1~0.4%가 되지만, 1주택자 재산세율은 구간마다 0.05%포인트가 차감된 0.05~0.35%가 된다.

이로 인해 재산세 인하 대상이 9억원 이하로 확정될 경우, 서울에 8억원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은 수십만원 혜택을 보지만 지방에 2억원짜리 집 두 채를 가진 사람은 세 경감 혜택을 못 받는 ‘역차별’이 발생할 전망이다.전문가들은 1주택자와 다주택자, 고가주택과 중저가 주택을 ‘편가르기’ 하는 정치 논리 때문에 세제가 세계 유례 없이 복잡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미국 등 대다수 국가의 보유세는 보유 주택 수에 따른 차등은 물론 과표구간별 누진 구조도 없는 단일세율 체계”라며 “한국은 재산세가 누진 구조이고 종부세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 복잡한데, 재산세까지 세율 체계를 둘로 쪼개면 세법이 누더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논리로 누더기 된 재산세제…재산 적은 다주택자 '역차별' 우려

정치 논리로 누더기 된 재산세제...재산 적은 다주택자 '역차별' 우려
‘가격 기준’까지 고려하면 세법은 더 복잡해진다. 정부는 1주택자이면서 공시가격 6억원 이하 또는 9억원 이하 주택에만 세금 인하 혜택을 줄 방침이다. 즉 0.05%포인트 인하되는 신설 세율은 6억~9억원 이하 1주택자에게만 해당된다. 1주택자라도 고가 주택 보유자는 기존 세율(0.1~0.4%)을 적용한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 가격이 8억9990만원이면 수십만원 세금이 줄고, 9억10만원이면 세금이 한 푼도 안 깎인다는 얘기”라며 “가격 기준을 어떻게 정하든 납세자의 불만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주택 가격이 9억원이 넘으면 내년부터 종합부동산세와 공시가격이 대폭 인상될 예정이다. 조금 비싼 집을 가졌다는 이유로 징벌적 과세를 부담하면서 세금 혜택은 일절 못 받는 셈이다.

재산이 적은 다주택자에 대한 ‘역차별’ 사례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재산세 인하 가격 기준이 9억원 이하로 정해지면 서울에 공시가격 8억원(시세 11억~12억원)인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는 세율 인하로 재산세가 약 25만원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방에 공시가격 2억원짜리 집 두 채를 가진 사람은 세금 감면을 받지 못한다. 총재산은 4억원으로 1주택자보다 훨씬 적은데도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전체 가구의 약 44%인 무주택자는 혜택이 전혀 없고 집 가진 사람만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득·재산 기반이 가장 열악한 건 무주택자인데 정작 이들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며 “재산세 경감 대책이 확정되면 ‘왜 우리는 아무런 혜택이 없냐’는 무주택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시가격 현실화 대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데 있다”며 “현실화 대책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산세 경감 방안은 다음주에 공개될 예정이다. 당초 29~30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세금을 깎아주는 기준 가격을 놓고 당·정·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발표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