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헌 뒤집은 巨與, 국민과의 약속이 이리 하찮은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내기 위한 당헌 개정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당원 투표에서 86.6%의 압도적 찬성 표가 쏟아졌다. ‘당 소속 선출직이 부정부패 등 중대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의 제약에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내년 4월 해당 지자체장 선거에 공천할 수 있게 됐다. 두 곳 모두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추행 비위로 공석이 됐는데도,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답이 뻔한 당원 투표로 넘어가려는 꼼수를 동원한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원의 뜻이 모아졌다고 잘못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고 했지만, 진정성이 담겼다고 보기 힘들다. 그랬다면 당원 말고 국민에게 물었어야 할 것이다. 해당 규정이 2015년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정치혁신을 한다며 만들었고,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자평까지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무리 정치지형이 급변하는 나라이고 야당 시절 만든 당헌이라고 해도 엄연히 국민과의 약속이 아닌가.현 정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병역 기피,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등 ‘7대 공직배제 기준’을 제시해놓고 스스로 유야무야시킨 게 대표적이다. 상당수 고위공직 후보자가 이 기준에 걸렸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최근엔 서욱 국방장관의 위장 전입 의혹이 불거졌었다. “요즘 장관 제안 받으면 차관 시켜달라고 한다”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렇게 인사 검증을 강화하자고 핏대를 세운 게 민주당이었다.

작년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에서 약속을 어기고 위성정당을 만든 것도 민주당이다. 공수처법도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인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야당의 견제권한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으로 압박한다. 경제분야도 마찬가지다.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세제 등 각종 혜택을 주던 것을 채 3년도 안 돼 없던 일로 돌리고, 느슨한 재정준칙을 만들어놓고 정작 시행은 다음 정권(2025년)으로 미룬 게 이 정부의 ‘약속’이다.

득표 유·불리를 따져 국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해서는 책임있는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말로는 그럴싸한 원칙을 내세우고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정권이 모든 게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 도덕과 원칙을 다 팽개치고도 국민이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