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증언한 이춘재 "마주친 대상 순간적으로…"(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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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티브된 '살인의 추억' "별 감흥 없이 봤다"…"피해자 고통 생각해 본 적 없어"
범행대상? "손 예쁘면 좋았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돌아서면 잊혀 다시 범행"
"내가 안 잡힌 것 이해 안 가…당시 경찰 보여주기식으로 수사한 것 같다"
"본인 이름이 이춘재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
'진범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나선 이춘재(56)가 2일 오후 법정에서 대중 앞에 나와 첫입을 뗐다. 이날 오후 수원지법 형사 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 사건 재심 재판에서 이춘재는 증인 신분으로 교도관들에 이끌려 피고인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록색 수의에 흰 명찰을 단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과 다름없었다. 다만 눈가에 잡힌 주름과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은 끔찍한 연쇄살인 이후 흘러간 기나긴 세월을 실감케 했다.
증인 선서를 마친 이춘재는 14건에 이르는 살인과 30여 건에 달하는 성범죄를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도 목소리를 높낮이 없이 한결같은 톤을 유지했다.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뒤에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몰랐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이어 "살인을 저지르고 나면 순간적으로는 이건 아니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며 "그러나 돌아서고 나면 그게 잊혀서 다른 범행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법정 안에서 이춘재가 쏟아내는 말들은 일반인의 사고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 투성이였다.
그는 자신의 범행 도중과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7살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준이나 계획 없이 그날 마주친 대상에 대해 순간적인 생각으로 범행했다"고 말했다.
과거 범행에 대해 진술할 때 무슨 기분이 드냐는 질문에는 "어찌 보면 후련함도 있겠는데 크게는 제가 저지른 일을 말하는 기분도 아니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남이 한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고 감정 없이 말했다.
수감 중 자신이 저지른 연쇄살인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도 봤지만 "그냥 영화로만 봤고,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며 "별 감흥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손에 대한 집착은 숨기지 않았다.
이춘재는 과거 프로파일러와 면담을 나누던 중 '손이 예쁘다.
만져봐도 되느냐?'라고 물었던 일화에 대해서 "만지고 싶어서 그랬다기 보다 원래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며 "얼굴, 몸매 이런 건 (범행대상을 고를 때) 보지 않고 손이 예쁜 게 좋다"고 답했다.
수사망을 피해 장기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데 대해선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몇번 심문을 받았지만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은 없다.
당시 경찰들이 보여주기식으로 수사를 한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반성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 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윤씨는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춘재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도 피고 측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주로 정면을 응시했다.
다만 중간 휴정 때 피고인 대기실로 이동하면서 윤씨와 잠깐 눈이 마주칠 때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88석 규모의 대법정과 같은 규모의 중계 법정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좌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적용해 좌석이 절반만 운영됐으며, 이춘재의 모습을 보려는 취재진과 방청객이 몰려 준비된 방청권은 모두 동이 났다.
윤씨의 가족들과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및 경찰 관계자들도 법정을 찾아 수의를 입은 이춘재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언론의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
/연합뉴스
범행대상? "손 예쁘면 좋았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돌아서면 잊혀 다시 범행"
"내가 안 잡힌 것 이해 안 가…당시 경찰 보여주기식으로 수사한 것 같다"
"본인 이름이 이춘재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
'진범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나선 이춘재(56)가 2일 오후 법정에서 대중 앞에 나와 첫입을 뗐다. 이날 오후 수원지법 형사 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 사건 재심 재판에서 이춘재는 증인 신분으로 교도관들에 이끌려 피고인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록색 수의에 흰 명찰을 단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과 다름없었다. 다만 눈가에 잡힌 주름과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은 끔찍한 연쇄살인 이후 흘러간 기나긴 세월을 실감케 했다.
증인 선서를 마친 이춘재는 14건에 이르는 살인과 30여 건에 달하는 성범죄를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도 목소리를 높낮이 없이 한결같은 톤을 유지했다.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뒤에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몰랐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이어 "살인을 저지르고 나면 순간적으로는 이건 아니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며 "그러나 돌아서고 나면 그게 잊혀서 다른 범행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법정 안에서 이춘재가 쏟아내는 말들은 일반인의 사고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 투성이였다.
그는 자신의 범행 도중과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7살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준이나 계획 없이 그날 마주친 대상에 대해 순간적인 생각으로 범행했다"고 말했다.
과거 범행에 대해 진술할 때 무슨 기분이 드냐는 질문에는 "어찌 보면 후련함도 있겠는데 크게는 제가 저지른 일을 말하는 기분도 아니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남이 한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고 감정 없이 말했다.
수감 중 자신이 저지른 연쇄살인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도 봤지만 "그냥 영화로만 봤고,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며 "별 감흥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손에 대한 집착은 숨기지 않았다.
이춘재는 과거 프로파일러와 면담을 나누던 중 '손이 예쁘다.
만져봐도 되느냐?'라고 물었던 일화에 대해서 "만지고 싶어서 그랬다기 보다 원래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며 "얼굴, 몸매 이런 건 (범행대상을 고를 때) 보지 않고 손이 예쁜 게 좋다"고 답했다.
수사망을 피해 장기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데 대해선 "나도 내가 왜 안 잡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몇번 심문을 받았지만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은 없다.
당시 경찰들이 보여주기식으로 수사를 한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반성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 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윤씨는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춘재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도 피고 측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주로 정면을 응시했다.
다만 중간 휴정 때 피고인 대기실로 이동하면서 윤씨와 잠깐 눈이 마주칠 때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88석 규모의 대법정과 같은 규모의 중계 법정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좌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적용해 좌석이 절반만 운영됐으며, 이춘재의 모습을 보려는 취재진과 방청객이 몰려 준비된 방청권은 모두 동이 났다.
윤씨의 가족들과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및 경찰 관계자들도 법정을 찾아 수의를 입은 이춘재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언론의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