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역사와 문화 없는 나라?…서양에 한국 홍보 나선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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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한국학 박사 1호 베르너 사세, 조선시대 세시풍속서 영어로 번역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적용해 '살아있는 문화' 만드는 노력 필요"
개량한복과 중절모, 길게 기른 흰 수염. 그러나 친숙한 그 모습 속 주인공은 파란 눈의 독일인. 지난달 27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하루 수만 명이 들고나는 곳이었지만 기자는 단번에 그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학자 겸 작가인 베르너 사세(80) 전 한양대 석좌교수를 제주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2017년 부인인 현대무용가 홍신자(79) 씨와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이날은 서울로 가는 부인을 배웅하러 공항에 온 참이었다.
그는 7년간 영어로 번역한 한국의 한문 고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미국 출판을 앞두고 있다.
먼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인 그는 1966년 전남 나주 호남비료공장 개발원조 사업에 참여하면서 처음 한국에 왔다.
1970년 다시 독일로 돌아간 그는 독일 보훔대학 일본학과를 다니면서 중국 문화와 한국학까지 동시에 공부했다.
그는 "한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독일에 한국학과가 없었다"며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학과 교수들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학과는 없었지만, 한국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부교수로 임명돼 독일 최초로 한국학과를 만든 독일의 한국학 박사 1호다.
1992년부터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한국에서 지낸 4년이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그는 함부르크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후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까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독일인인 그가 오랜 시간 한국학을 연구하고 한국의 한문 고서를 영어로 번역까지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번역한 '동국세시기'는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서로, 당시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세시풍속을 월별로 정연하게 기록돼 있다. 사세 교수는 "한국은 특히 수천 년간 이어온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이 문화를 세계적으로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서양에서는 한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IT 기술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사와 문화는 없는 나라라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오해를 바로잡고자 직접 한국 알리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사세 교수는 한글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6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한글의 글자디자인: 유서 깊은 전통 속 천재 독창적인 발명'이란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발표에서 '한글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과 언어학적 방법론을 결합시켰던 세계 유일의 문자 체계이다'고 평가했다.
또 '의식과 정신에 호소하면서 사용하기 쉽고, 필요한 만큼 정교하면서도 가능한 단순한 체계로 한국말 발음과 한문 발음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글로는 어떤 언어의 어떤 소리도 표기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는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증거로 한국어 음성 체계에 들어 있지 않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소리를 제시했다.
그는 "언어조사 방법을 통해 보면 한글은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 적용된 음성학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식으로 고쳐져 적용됐다고 사세 교수는 설명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당시 세종대왕이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를 믿는 불자였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글은 고대 인도 언어학에서 유래한 글자 중 가장 뛰어나다"며 "이 같은 한글을 연구하고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하고 책을 출간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세 교수는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과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국민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부족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자신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결국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세 교수는 한국학자뿐 아니라 수묵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6년 한국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벌써 초대전 20회, 단체전 16회 등 40회 가까운 전시를 진행했다.
3개월 전부터는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에 스튜디오도 차려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항에서 그를 만나고 며칠 뒤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널찍한 유리창에 내걸린 그의 작품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수묵화 작업을 예로 들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세 교수는 "나는 서양식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며 "주로 서양화 화가는 국제적 유행을 따라가고, 동양화 화가의 경우 19세기 전통을 그대로 좇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화와 동양화를 구분 짓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통문화의 원리·원칙을 오늘날에 맞게 새롭게 적용해 '살아있는 문화'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은 '한복'하면 주로 예복을 떠올리면서 아름답지만 불편한 옛날 옷으로만 생각한다"며 "하지만 사실 내가 입고 있는 개량한복도 한복이다.
전통문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해 21세기에도 살아있는 문화를 만들어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천 년간 이어온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수묵화 작업과 함께 앞서 말했듯 한국 전통문화, 특히 한글(훈민정음)을 연구해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해 한글과 한복, 한옥 등 한국의 '진짜'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dragon.
/연합뉴스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적용해 '살아있는 문화' 만드는 노력 필요"
개량한복과 중절모, 길게 기른 흰 수염. 그러나 친숙한 그 모습 속 주인공은 파란 눈의 독일인. 지난달 27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하루 수만 명이 들고나는 곳이었지만 기자는 단번에 그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학자 겸 작가인 베르너 사세(80) 전 한양대 석좌교수를 제주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2017년 부인인 현대무용가 홍신자(79) 씨와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이날은 서울로 가는 부인을 배웅하러 공항에 온 참이었다.
그는 7년간 영어로 번역한 한국의 한문 고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미국 출판을 앞두고 있다.
먼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인 그는 1966년 전남 나주 호남비료공장 개발원조 사업에 참여하면서 처음 한국에 왔다.
1970년 다시 독일로 돌아간 그는 독일 보훔대학 일본학과를 다니면서 중국 문화와 한국학까지 동시에 공부했다.
그는 "한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독일에 한국학과가 없었다"며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학과 교수들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학과는 없었지만, 한국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부교수로 임명돼 독일 최초로 한국학과를 만든 독일의 한국학 박사 1호다.
1992년부터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한국에서 지낸 4년이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그는 함부르크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후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까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독일인인 그가 오랜 시간 한국학을 연구하고 한국의 한문 고서를 영어로 번역까지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번역한 '동국세시기'는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서로, 당시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세시풍속을 월별로 정연하게 기록돼 있다. 사세 교수는 "한국은 특히 수천 년간 이어온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이 문화를 세계적으로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서양에서는 한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IT 기술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사와 문화는 없는 나라라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오해를 바로잡고자 직접 한국 알리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사세 교수는 한글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6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한글의 글자디자인: 유서 깊은 전통 속 천재 독창적인 발명'이란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발표에서 '한글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과 언어학적 방법론을 결합시켰던 세계 유일의 문자 체계이다'고 평가했다.
또 '의식과 정신에 호소하면서 사용하기 쉽고, 필요한 만큼 정교하면서도 가능한 단순한 체계로 한국말 발음과 한문 발음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글로는 어떤 언어의 어떤 소리도 표기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는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증거로 한국어 음성 체계에 들어 있지 않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소리를 제시했다.
그는 "언어조사 방법을 통해 보면 한글은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 적용된 음성학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식으로 고쳐져 적용됐다고 사세 교수는 설명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당시 세종대왕이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를 믿는 불자였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글은 고대 인도 언어학에서 유래한 글자 중 가장 뛰어나다"며 "이 같은 한글을 연구하고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하고 책을 출간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세 교수는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과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국민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부족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자신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결국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세 교수는 한국학자뿐 아니라 수묵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6년 한국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벌써 초대전 20회, 단체전 16회 등 40회 가까운 전시를 진행했다.
3개월 전부터는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에 스튜디오도 차려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항에서 그를 만나고 며칠 뒤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널찍한 유리창에 내걸린 그의 작품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수묵화 작업을 예로 들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세 교수는 "나는 서양식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며 "주로 서양화 화가는 국제적 유행을 따라가고, 동양화 화가의 경우 19세기 전통을 그대로 좇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화와 동양화를 구분 짓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통문화의 원리·원칙을 오늘날에 맞게 새롭게 적용해 '살아있는 문화'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은 '한복'하면 주로 예복을 떠올리면서 아름답지만 불편한 옛날 옷으로만 생각한다"며 "하지만 사실 내가 입고 있는 개량한복도 한복이다.
전통문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해 21세기에도 살아있는 문화를 만들어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천 년간 이어온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수묵화 작업과 함께 앞서 말했듯 한국 전통문화, 특히 한글(훈민정음)을 연구해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해 한글과 한복, 한옥 등 한국의 '진짜'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