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포괄임금제 지침…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2018년 6월 발표 공언했지만 이후 4차례 연기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에 주52시간제 시행까지
친노동 정책 휘몰아친 산업현장 어려움 가중 우려
사진=게티이미지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제도 개선을 천명하고도 3년 넘게 시작도 못하고 있는 노동관련 정책이 있다. 정권 출범의 지분을 가진 노동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친노동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감히 엄두가 안나 무려 4차례나 발표를 연기한 정책이다. 바로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이다.

정부가 최근 다시금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를 놓고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내년 상반기 중 발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집권 초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52시간제 전격 시행 등 친노동 정책을 휘몰아치면서도 꺼내들지 못했던 카드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전격 발표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전체 사업장의 절반 이상에서 활용하고 있는 포괄임금제를 일거에 손보려다가 상상치 못한 후폭풍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자의 초과근로시간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노사 합의로 정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인 이상 사업장의 55% 가량(2017년 9월 기준)이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포괄임금제가 노동관계법에 규정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이 판례로 실체를 인정하고, 고용부가 '노사 합의로 이뤄진 임금체계'라고 행정해석을 내림으로써 산업현장에서는 수십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관행이 됐다.

그러던 중 포괄임금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에서 포괄임금제를 적용 가능한 경우를 엄격하게 해석하기 시작하면서다. 연장근로 시간에 관계없이 '제수당 월 40만원'하는 식으로 퉁치는 포괄임금제는 '21세기 노비문서'라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제기된 것도 때를 같이 한다. 노동계의 염원을 짊어진 문재인 정부가 총대를 멨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포괄임금제 개선을 공론화했고, 바통을 넘겨받은 고용부는 곧바로 준비에 착수해 같은 해 10월 '포괄임금제 사업자 지도지침' 초안이 마련됐다. 초안에는 그간의 판례를 반영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포괄임금제를 인정하고, 노사 합의는 명시적인 형태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가령 기상조건에 따라 매일 근로시간이 달라지거나, 주로 외근을 하면서 상황에 따라 근무시간이 달라지는 경우, 경비업무 등 대기시간이 많아 실제 근로시간의 측정이 어려운 경우 등에만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포괄임금제가 인정된다는 얘기다.

초안을 마련한 정부는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2018년 6월 발표를 선언했다. 당해 7월 주52시간제를 시행하는 데 따른 동반조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았고 정부는 발표를 3분기로 미뤘다. 그러나 3분기에도 발표는 나오지 않았고, 지난해 3월과 10월에 이재갑 고용부 장관의 '조만간 발표' 발언도 지켜지지 않았다. 2년여에 걸쳐 4차례나 발표시점을 연기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최저임금이 무려 16.4%나 오른 상황에서 주52시간제까지 같은 해 7월 전격 시행되면서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르던 터였다. 당시 고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포괄임금제 폐지? 지금 이 판국에 그걸 어떻게 발표하겠나. 상황을 봐야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적절한 발표 타이밍을 보고 있던 정부였지만 2019년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2018년 16.4%에 이어 2019년 최저임금도 10.9%나 인상되면서 영세 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됐고, 야심차게 도입을 강행했던 주52시간제도 기업 규모별로 6개월~1년씩 사실상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관의 두 차례 공언도 지켜지지 않은 이유다.

◆'근로자에 일방적 불리 아니다' 정부조사 결과도

포괄임금제 개선 또는 폐지 이슈가 전에 비해 슬쩍 사그라든 이유는 또 있다.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던 고용부가 지난해 초 포괄임금제 사업장 30곳을 조사한 결과, 근로자가 실제 일한 시간보다 임금을 적게 준 사업장은 5곳에 불과했다. 상당수 기업에서 포괄임금제를 운용하고 있지만 근로자에게 그다지 불리하지 않다는 의외의 조사 결과였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그동안 노동계에서 포괄임금제에 대해 '공짜노동 강요문서'라고 비판해온 것이 무색해지는 계기였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발표를 미루는 사이에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네이버, 위메프에 이어 지난해에는 스마일게이트, 넷마블, 넥슨 등도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은 준비한대로 발표가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정권 후반기 개각도 예정돼있는 등 불확실성이 많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