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최고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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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간섭하고 족쇄 채우면서집권당 정치인들이 ‘기업규제 3법’을 밀어붙이면서 부작용을 지적하는 기업인들에게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정의’를 말하는데, 당신들은 ‘불편’을 읊조리고 있다.” 논의 여지를 틀어막는 독선(獨善)의 화법 앞에서 기업인들은 할 말을 잃고 만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지배구조와 거래방식만이 옳다고 우기는 ‘정의 팔이’ 프레임정치의 무지(無知)와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정의 앞에서 불편은 참으라"니
이익 많이 내 일자리 늘리는 게
기업에 맡겨진 사회적 책임
그걸 파괴하는 '망상' 벗어나야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3법에는 상장회사가 감사를 선임할 때 최대주주는 아무리 지분율이 높아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따위의 독소조항이 많다.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의 비유처럼 “11명이 출전해야 할 축구에 5명만 뛰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조항을 도입하는 이유는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 전횡을 막기 위해서”이며, 그러므로 정의로운 개혁이라는 게 집권당 주장이다.정말로 정의로운 법이라면 다른 나라들도 시행하고 있거나 도입해야 할 텐데, 그런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 말이 안 되는 억지규정이기 때문이다. 상장회사의 소액주주들이 대주주를 감시하고 부실경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는 지금도 많다. 대표적인 게 주식 매매다. 투자자들은 경영이 엉터리다 싶으면 주식을 투매하는 것으로 응징하고, 잘하고 있다면 추가 매입하는 것으로 힘을 실어준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고 투명한 경영견제(또는 격려) 장치는 없다. 허위공시에 대한 중벌(重罰) 등 소액주주들을 속이는 행위를 엄단하는 법규도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억지 정책에 ‘공정’과 ‘정의’라는 이름표를 달고 밀어붙이는 것은 ‘기업관(觀)’이 잔뜩 꼬여있어서다. 집권경험을 쌓은 지 10년이 훌쩍 넘도록 “기업들은 각종 제도와 법령으로 감시하고 간섭하지 않으면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만다”는 ‘기업성악설(性惡說)’의 환상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최우선 사명(使命)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기업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내고, 회사를 튼실하게 키워내는 게 첫 번째 사명이다. 이익을 많이 내야 법인세 등 세금을 나라에 더 많이 낼 수 있고, 회사를 키워야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정의’롭고 폼 나게 경영하는 게 최우선 사명이라는 주장은 무지의 발로(發露)다. 미국의 대표적 좌파신문인 뉴욕타임스가 50년 전 게재한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의 글에 왜 그런지가 잘 설명돼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늘리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는 “기업이 제대로 이익을 내고 존속하려면 눈속임과 사기를 부릴 수 없다”는 대목이 있다. “시장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익을 늘려나가는 존재가 기업이다.”미국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가 지난 7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내용도 같은 메시지를 담았다. “고객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서비스에 불만을 쏟아낸다. 기업 경영은 그런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더 나은 방법을 쉼 없이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소수의 경영인들이 독차지하므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부적절함은 예일대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가 설명해준다. “1948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기업들이 창출한 가치의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사회적 후생을 높이는 데 돌아갔다. 기업의 신기술 발명자들이 누린 것은 사회적 총잉여의 4%에 불과했다.”(월스트리트저널 10월 12일자 앤디 케슬러 칼럼)
그가 미국 경제조사국에 기고한 2006년 논문에는 “정부가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1달러를 가로채면 25배에 이르는 사회적 부(富)가 증발한다”는 대목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청와대에 ‘일자리상황판’부터 설치하며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다. 그런 정부에서 ‘일자리 파괴’ 정책을 쏟아낸 결과를 2030 젊은 세대가 혹독하게 감당하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로 투자처를 옮기면서 일자리가 갈수록 줄자 정부는 세금으로 급조한 월 40만~60만 원짜리 ‘무늬만 일자리’로 고용통계를 분식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