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내가 겪은 고통도 배우로서 자산"

"연기하면서 위안 얻어…최선에 한계 두지 않는 배우 될 것"
30년 넘게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연기 인생을 펼쳐온 배우 김혜수는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주인공 현수의 고통을 고스란히 이해한듯했다. 영화는 삶의 벼랑 끝에 선 형사 현수가 유서 한 장 남기고 외딴섬에서 사라진 소녀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혜수는 "현수와 상황은 달랐지만 내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작품을 선택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전날 열린 간담회에서도 "영화를 선택했던 시기에 좌절감이나 상처가 있었다"며 "자연스럽게 작품에 마음이 갔고, 연기를 하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형사는 물론 범죄조직 보스, 톱스타, 기생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김혜수가 마음을 뺏긴 현수는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소송을 해야 하는 와중에 팔 마비를 겪으며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인물이다.
김혜수는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던 대상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신이 살아온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이라며 "현수는 결국 나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고 캐릭터를 해석했다.

그는 "아무리 밝은 사람도 해맑은 인생만을 살지는 않는다. 나 역시 고통과 슬픔을 피하지 못한다"며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상처로 인생이 모두 무너진 것 같은 시기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경험은 영화 속 현수에게 절절하게 배어있다.

김혜수는 "배우에게 자산은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이라며 "내가 느끼는 기쁨도 자산이지만, 고통도 자산이다. 캐릭터를 그리려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살면서 겪어온 고통은 배우로서 자산뿐 아니라 인생의 지혜가 되기도 했다.

김혜수는 "절망이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그때는 안 보여도 곁에 있는 사람이 위로되기도 한다"며 "관객들도 영화를 보며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내가 죽던 날'은 김혜수에게 위안을 준 작품이다.

그는 '네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 길다', '네가 남았다' 등 영화에 등장하는 문구에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말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제는 고통을 견디는 법도, 이를 배우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법도 알고 있는 김혜수는 앞으로 '최선에 한계를 두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은 모르겠지만, 감사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있다"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최선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있다. 최선보다는 충실한 배우가 되겠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