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당선인 누군가…'미국적 가치'로 트럼프와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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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아들아, 쓰러지면 얼른 일어나렴. 저는 상실의 고통을 잘 알고, 끈질긴 회복력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 미국인들도 일어납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미국적인 가치와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모든 면에서 ‘각’을 세우며 승기를 잡았다. 세 차례 대권에 도전한 끝에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화려한 정치 이력과 풍부한 국정 경험, 대중 인지도를 갖춘 노련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1969년 변호사가 된 바이든 당선인은 1970년 카운티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9세인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거물을 꺾고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 기록을 세우며 중앙정치 무대에 뛰어든 그는 내리 6선에 성공하며 전국구 인사로 자리매김했다.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는 8년간 부통령을 맡았다. 다양한 경력 덕분에 자주 대선 후보로 거론됐고 1988년과 2008년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8년 경선에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본선을 함께 치렀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2016년 대선 때도 출마를 검토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부통령 재임 당시에는 미국 내 재정 절벽 위기를 피하기 위해 세금인상과 지출 삭감에 대한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해 코네티컷 뉴타운 참사 이후 총기 규제 특별전담반을 이끌며 오바마 전 대통령과 총기 사태를 줄일 수 있는 행정명령을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 인종통합정책에 반대했지만 오바마 대통령보다 먼저 동성 간 결혼을 지지했으며 부통령 당시 시진핑 주석과의 단독 만찬만 8차례 하며 '최고의 중국통'으로 불렸지만 이번 대선에선 '반중'을 내세웠다. 이처럼 바이든 당선인은 당대의 여론과 현실의 맥락을 따르는 중도 실용주의로 평가된다.
이후 30여 년간 암트랙(미국 철도)을 타고 워싱턴DC와 델라웨어 윌밍턴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왕복 350㎞, 3시간 반 거리였다. 친해진 승무원들을 집으로 불러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은 열차 직원을 ‘가족’으로 부를 만큼 서민적이었으며 장기간 통근 덕분에 델라웨어에서 다선 의원직을 유지하며 정치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
현 부인인 질 바이든과 1977년 재혼하기 전까지 혼자 두 아들을 돌봤다. 질 여사는 교육학 박사로, 노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던 바이든은 2015년 5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숨지는 불운까지 겪었다.
바이든은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공감 능력과 친화력을 앞세워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NYT는 평가했다. 가족 중심적이고 이웃에게 따뜻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차별에 반대하는, 가장 ‘미국적인 가치’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했고 이 같은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미국적인 가치와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모든 면에서 ‘각’을 세우며 승기를 잡았다. 세 차례 대권에 도전한 끝에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화려한 정치 이력과 풍부한 국정 경험, 대중 인지도를 갖춘 노련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풍부한 정치 이력, 국정 경험 강점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중고차 영업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백인 중에서 소수인 아일랜드계다. 아버지가 자주 실직하는 등 집안이 넉넉치(Humble Beginnings) 않았다고 회고했다.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1969년 변호사가 된 바이든 당선인은 1970년 카운티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9세인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거물을 꺾고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 기록을 세우며 중앙정치 무대에 뛰어든 그는 내리 6선에 성공하며 전국구 인사로 자리매김했다.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는 8년간 부통령을 맡았다. 다양한 경력 덕분에 자주 대선 후보로 거론됐고 1988년과 2008년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8년 경선에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본선을 함께 치렀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2016년 대선 때도 출마를 검토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협상에 능한 중도 실용주의자
바이든 당선자는 ‘진보·여성·유색인종’ 등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이념에 중도 성향까지 갖춘 점이 이번 대선 때 부동층 공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지난 정치적 활동 중 소련과의 전략적 무기 제한 옹호, 발칸 반도의 평화와 안정 증진, 구소련권 국가를 포함하는 NATO 확장 및 1차 걸프전 반대 등이 그의 주요 외교정책이었다. 또한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 군대 증파에 반대했다.부통령 재임 당시에는 미국 내 재정 절벽 위기를 피하기 위해 세금인상과 지출 삭감에 대한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해 코네티컷 뉴타운 참사 이후 총기 규제 특별전담반을 이끌며 오바마 전 대통령과 총기 사태를 줄일 수 있는 행정명령을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 인종통합정책에 반대했지만 오바마 대통령보다 먼저 동성 간 결혼을 지지했으며 부통령 당시 시진핑 주석과의 단독 만찬만 8차례 하며 '최고의 중국통'으로 불렸지만 이번 대선에선 '반중'을 내세웠다. 이처럼 바이든 당선인은 당대의 여론과 현실의 맥락을 따르는 중도 실용주의로 평가된다.
애절한 가족사, 미국인 공감 얻어
정치인으로 성공한 바이든의 이면에 있는 애절한 가족사도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1972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뒤 교통사고로 부인과 13개월짜리 딸을 잃었고 두 아들은 다쳐 입원했다. 이때 충격으로 의원직 사퇴까지 고려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이듬해 아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이후 30여 년간 암트랙(미국 철도)을 타고 워싱턴DC와 델라웨어 윌밍턴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왕복 350㎞, 3시간 반 거리였다. 친해진 승무원들을 집으로 불러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은 열차 직원을 ‘가족’으로 부를 만큼 서민적이었으며 장기간 통근 덕분에 델라웨어에서 다선 의원직을 유지하며 정치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
현 부인인 질 바이든과 1977년 재혼하기 전까지 혼자 두 아들을 돌봤다. 질 여사는 교육학 박사로, 노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던 바이든은 2015년 5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숨지는 불운까지 겪었다.
바이든은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공감 능력과 친화력을 앞세워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NYT는 평가했다. 가족 중심적이고 이웃에게 따뜻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차별에 반대하는, 가장 ‘미국적인 가치’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했고 이 같은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아들 스캔들, 건강 등 약점도
강점만큼 약점도 많다. 고령인 데다 1988년 두 차례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다. 잦은 말실수와 기억력 둔화 증세를 보인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졸린 조(Sleepy Joe)’라고 부르며 치매에 걸린 것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바이든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둘째 아들 헌터 바이든은 그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부통령 시절 헌터가 우크라이나 회사에 채용된 뒤 부당이득을 취했지만 바이든은 이를 모른 채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했다는 내용의 로비 스캔들이 불거졌다. 1993년 의원실 여직원에게, 2015년엔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부인에게, 같은 해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의 10대 딸에게 각각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미투’ 폭로가 잇따르면서 논란도 일었다.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