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힘든 것 있냐고 묻는 어른은 왜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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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친 아이들 마음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출간
'단절·규칙·일상유지·결손·중독'…아이들이 겪은 5가지 트라우마
인천 '라면 화재' 형제의 참담한 소식에 많은 국민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코로나 시대'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코로나 관련 담론은 어른들 중심으로 이뤄졌고,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학력에 쏠렸으며 학생들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을 맡은 김현수 전문의가 쓴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덴스토리)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아이들 마음 보고서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코로나 때문에 힘든 것이 있냐고 묻는 어른이 왜 없나요"라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주장 때문이었다며 진료실과 학교에서 만나고, 전해 들은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상처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우선 새 학기가 사라지면서 '단절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진급은 성장의 의미이고 새로운 출발이며, 새로운 반은 강력한 소속감을 주는 집단이고 그 안에 있는 친구들은 동료들인데 이 모든 것이 멈춰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막연한 공포감이 아이들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구 못 만나는 어려움', '학급 또래 활동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면 어른들은 '친구가 밥 먹여주느냐', '또래들과 노닥거릴 시간에 네 할 일을 더 해라'라고 말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또래를 필요로 한다.
또한, 부모는 놀이 친구로서 한계가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는 규칙을 잘 안 지키고 금방 지루해하며 진심으로 같이 노는 게 아니라 놀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부모와의 놀이에 흥미와 재미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모두 다 함께 코로나 걸리기로 하고 학교도 열고, 친구도 만나고, 소리도 같이 지르고 뛰어다니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의 괴로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아요"라는 중3 여학생의 말을 옮긴다.
다른 상처는 무한 반복되는 도돌이표 잔소리에 따른 '규칙 트라우마'다.
가족과 오랜 시간 붙어 지내야 했던 아이들은 '손은 씻었냐, 마스크 안 쓰면 민폐다, 스마트폰 아직도 보고 있냐'라는 잔소리가 돌림노래 같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집에서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컸다.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장 짜증 나고 당황한 이야기는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이었다고 한다.
규칙이 무너진 비상사태에서 규칙적으로 최대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보내라는 말이 부담을 주는 경우에는 상당한 저항감이 들었다고 한다.
'결손 트라우마'도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대화 중 특히 마음 아파하는 말로 "이번 1학기 동안 코로나로 인해 우왕좌왕하면서 별로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그래도 잘 버텼고 노력했고, 또 그사이에 깨닫고 생각하게 된 것도 많고 나름대로 컸는데, 별로 한 것이 없다고 하니 참 허탈하다고 아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의 상처는 '중독 트라우마'다.
코로나 시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부모님들과 부딪친 문제는 스마트폰 이슈였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결과로 사용 증가를 전부 아이들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많은 아이가 억울해 할 것이라고 저자는 대변한다.
스마트폰을 실컷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단지 조절이 되지 않을 뿐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상처들을 받는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했을까.
코로나와 관련해 진행된 수많은 담론과 정책들은 성인 위주였다.
관련 조사는 성인 중심으로 이뤄져 아이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부모가 의견을 대신 내면서 자녀를 대변하기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코로나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걱정이 되는 일로 '공부를 안 하는 것, 공부를 못하는 것'을 꼽는다.
학력 중심의 담론에 아이들의 불안과 걱정, 우울 등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학생은 감염 예방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고, 이들에 대한 돌봄은 그저 '부담'이란 관점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교사들은 업무와 혼란, 비난의 과잉에서 힘들어했고 부모들은 걱정과 잔소리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저자는 코로나 트라우마 회복 여정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종교적 기관에서 다양한 사회단체까지 모두 함께 만들어서 온 국민이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아울러 아이들의 우울을 예방하는 '친구 백신, 격려 백신, 규칙 백신, 안심 백신, 조절 백신'과 상처를 적게 주는 대화법, 청소년과 집에서 잘 지내기 위한 부모들의 태도 요령 등을 소개한다. /연합뉴스
'단절·규칙·일상유지·결손·중독'…아이들이 겪은 5가지 트라우마
인천 '라면 화재' 형제의 참담한 소식에 많은 국민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코로나 시대'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코로나 관련 담론은 어른들 중심으로 이뤄졌고,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학력에 쏠렸으며 학생들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을 맡은 김현수 전문의가 쓴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덴스토리)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아이들 마음 보고서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코로나 때문에 힘든 것이 있냐고 묻는 어른이 왜 없나요"라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주장 때문이었다며 진료실과 학교에서 만나고, 전해 들은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상처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우선 새 학기가 사라지면서 '단절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진급은 성장의 의미이고 새로운 출발이며, 새로운 반은 강력한 소속감을 주는 집단이고 그 안에 있는 친구들은 동료들인데 이 모든 것이 멈춰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막연한 공포감이 아이들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구 못 만나는 어려움', '학급 또래 활동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면 어른들은 '친구가 밥 먹여주느냐', '또래들과 노닥거릴 시간에 네 할 일을 더 해라'라고 말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또래를 필요로 한다.
또한, 부모는 놀이 친구로서 한계가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는 규칙을 잘 안 지키고 금방 지루해하며 진심으로 같이 노는 게 아니라 놀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부모와의 놀이에 흥미와 재미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모두 다 함께 코로나 걸리기로 하고 학교도 열고, 친구도 만나고, 소리도 같이 지르고 뛰어다니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의 괴로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아요"라는 중3 여학생의 말을 옮긴다.
다른 상처는 무한 반복되는 도돌이표 잔소리에 따른 '규칙 트라우마'다.
가족과 오랜 시간 붙어 지내야 했던 아이들은 '손은 씻었냐, 마스크 안 쓰면 민폐다, 스마트폰 아직도 보고 있냐'라는 잔소리가 돌림노래 같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집에서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컸다.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장 짜증 나고 당황한 이야기는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이었다고 한다.
규칙이 무너진 비상사태에서 규칙적으로 최대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보내라는 말이 부담을 주는 경우에는 상당한 저항감이 들었다고 한다.
'결손 트라우마'도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대화 중 특히 마음 아파하는 말로 "이번 1학기 동안 코로나로 인해 우왕좌왕하면서 별로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그래도 잘 버텼고 노력했고, 또 그사이에 깨닫고 생각하게 된 것도 많고 나름대로 컸는데, 별로 한 것이 없다고 하니 참 허탈하다고 아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의 상처는 '중독 트라우마'다.
코로나 시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부모님들과 부딪친 문제는 스마트폰 이슈였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결과로 사용 증가를 전부 아이들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많은 아이가 억울해 할 것이라고 저자는 대변한다.
스마트폰을 실컷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단지 조절이 되지 않을 뿐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상처들을 받는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했을까.
코로나와 관련해 진행된 수많은 담론과 정책들은 성인 위주였다.
관련 조사는 성인 중심으로 이뤄져 아이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부모가 의견을 대신 내면서 자녀를 대변하기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코로나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걱정이 되는 일로 '공부를 안 하는 것, 공부를 못하는 것'을 꼽는다.
학력 중심의 담론에 아이들의 불안과 걱정, 우울 등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학생은 감염 예방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고, 이들에 대한 돌봄은 그저 '부담'이란 관점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교사들은 업무와 혼란, 비난의 과잉에서 힘들어했고 부모들은 걱정과 잔소리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저자는 코로나 트라우마 회복 여정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종교적 기관에서 다양한 사회단체까지 모두 함께 만들어서 온 국민이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아울러 아이들의 우울을 예방하는 '친구 백신, 격려 백신, 규칙 백신, 안심 백신, 조절 백신'과 상처를 적게 주는 대화법, 청소년과 집에서 잘 지내기 위한 부모들의 태도 요령 등을 소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