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공격 앞으로…'안정 지향' GS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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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재편·M&A 파격 행보한 유통회사 대표는 “허를 찔렸다”고 했다. “충격을 받았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있었다. GS가 11일 국내 편의점과 홈쇼핑업계 1위인 GS리테일과 GS홈쇼핑을 합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시장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그만큼 전격적이었다.
유통 통합으로 시장에 충격
'주력' 에너지·발전 실적 부진
유통사업도 성장 한계 닥치자
'애자일조직'으로 변신 나서
인수합병(M&A)업계에서도 GS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GS건설이 1조원 규모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유력 인수 후보로 꼽히던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가장 위협적 상대”라며 긴장하고 있다. GS칼텍스는 ‘LG와는 같은 산업에서 경쟁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깼다. 2조7000억원을 투자한 에틸렌, 폴리에틸렌 공장을 내년에 완공해 LG화학과 경쟁하게 된다.GS는 과거 국내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보수적인 경영을 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 행보를 보면 전혀 아니다. 과거와 다른 ‘공격적’인 행보에 “GS가 달라졌다”는 말이 경제계에서 나오고 있다.
“변신 없인 도태된다” 위기감
GS가 변신을 선택한 배경에는 자칫 도태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GS는 에너지·발전이 주력이다. 중심에 GS칼텍스가 있다. 한 해 매출 30조원 이상, 영업이익 2조원 이상을 꾸준히 책임져왔다. 그런데 올해 GS칼텍스 실적이 고꾸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탓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적자를 1조원 내로 막는 게 최대 목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발전 사업을 하는 GS EPS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작년의 ‘반토막’ 수준인 400억원대에 불과했다.문제는 에너지 사업 부진이 언제 해소될지 가늠이 안 된다는 데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전기차 보급 등으로 정유 사업이 과거처럼 조단위 이익을 내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캐시카우’ 유통도 좋지 않다. GS리테일은 국내 편의점산업의 급성장을 이끈 회사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 이상으로 국내에 편의점이 많이 생긴 배경에는 GS25의 공격적 확장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편의점산업은 최근 2년 새 과포화 상태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성장이 멈췄다. 올 상반기 GS리테일 매출은 4조3526억원으로 1년 전과 차이가 없다. 홈쇼핑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비대면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GS홈쇼핑의 실적은 작년과 비슷했다. 비대면 소비 트렌드의 가장 큰 혜택은 쿠팡, 마켓컬리 등 신생 이커머스 업체가 가져갔다. “위기가 변화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디지털 리더십’이 변화의 핵심
GS 변신의 핵심 요인은 허태수 GS 회장(사진)의 디지털 리더십이다. 허 회장은 작년 말 그룹 인사 때 회장에 오른 뒤 적극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취임 일성이 ‘디지털 전환’이었다. “핵심 기술에 디지털 역량을 접목하라”고 지시했다. 디지털 전환은 이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실질적 성과를 강조했다. 그는 또 “핵심 사업과 연관한 신사업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조직 문화도 “민첩하게 대응하는 애자일 방식으로 바꾸라”고 주문했다. 허 회장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내부로 전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허 회장은 직전까지 GS홈쇼핑을 이끌었다. 당시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이들의 혁신을 회사 내부로 가져오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시도했다. ‘관료화된 대기업이 스스로 변하긴 어렵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M&A, 벤처투자, 신사업 진출 등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변화’를 꾀했다.
경쟁사들의 발 빠른 움직임도 GS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GS는 국내 재계 8위 그룹이다. 바로 앞에 7위 한화가 있다. 한화는 최근 변화와 혁신의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주력 사업인 화학, 태양광, 첨단소재를 하나로 합쳐 올초 한화솔루션이란 회사를 출범시켰다. 미국 수소인프라 시장 진출과 에너지 기업 젤리 인수, 방산분야 해외시장 개척 등 잇단 사업 확장과 굵직한 성과를 내면서 시가총액이 1.5배 증가했다. GS는 12일 임원 정기인사를 한다. 또 어떤 큰 변화가 있을지 업계에선 주목하고 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