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신외감법 2년...감사비용 70% 폭등

신(新)외부감사법 시행 2년을 넘기면서 회계감사 비용 급증에 따른 부담을 호소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한국공인회계사회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新)외부감사법 시행 2년 만에 기업의 회계감사 비용이 약 7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기적 감사인지정제, 표준감사시간, 내부회계관리제도 등의 적용으로 감사가 엄격해지고 시간도 대폭 늘어난 탓이다. 2018년 11월부터 시행된 신외감법은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위해 정부가 직접 회계감사법인을 지정하고 적정감사시간을 제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2일 한국경제신문이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유가증권시장 100개, 코스닥 100개) 중 외부감사 비용을 공개한 173개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감사용역 금액은 130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지출금액(1162억원) 보다 12.3% 늘었다. 신외감법 도입 직전인 2018년 감사비용(782억원)과 비교하면 66.9% 증가한 규모다. 대기업보다는 코스닥시장 중소·중견기업의 부담이 확연히 커졌다. 코스닥 84개사의 올해 감사비용은 182억원으로 작년보다 29.8% 뛰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89곳 증가율(9.8%)의 약 세 배에 달한다. 올해부터 신외감법 적용 대상이 대기업에서 중견기업 등으로 확대된 여파다.

○감사인지정·표준시간·내부회계 ‘3중고’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최근 회계법인이 보내온 계약서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주기적 감사인지정제에 따라 새 감사인으로 배정된 회계법인이 올해(68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1억5600만원을 요구해서다. A사 관계자는 “감사 시간이 늘고 단가가 올랐을 뿐 아니라 이전 회계법인은 지역 내에 있었지만 서울에 본사를 둔 새 회계법인은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요구해 비용이 확 늘었다”고 난감해했다. 과거엔 상장사가 감사를 맡길 회계법인을 고르는 '갑'의 입장이었지만 신외감법 시행 이후엔 이 관계가 역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외감법의 핵심은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업은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6년간 선임한 후에는 정부가 지정하는 감사인으로부터 3년간 외부감사를 받아야한다. 자동적으로 지정되는 기업은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힘들게 영업을 할 필요가 없는 고객이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신외감법을 도입했지만 감사 보수가 한꺼번에 큰 폭으로 인상되는 바람에 감사품질 향상이라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한경이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회사별로 1년 만에 두세 배 이상 불어난 곳도 많았다. 리조트업체 아난티는 작년 6000만원이던 감사비용이 올해 2억8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감사인지정제에 따라 회계법인이 교체되면서 시간당 감사보수가 4만8000원에서 11만원으로 오른 데다 표준감사시간 적용으로 1251시간에서 2542시간까지 투입시간이 급증한 탓이다. 이 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상반기 36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다원시스(200.0%) 컴투스(123.5%) 케이엠더블유(113.3%) 강원랜드(110.6%) 에이치엘비생명과학(108.3%) 등도 감사비용이 전년 대비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부터 적용된 표준감사시간제 역시 비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표준감사시간제는 업종·자산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감사 시간을 정해 놓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가이드라인인 표준감사시간제를 의무사항처럼 적용하면서 절대 시간이 늘어난 데다 주기적지정제로 시간당 단가 결정권이 커지면서 감사 보수가 치솟고 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시간당 감사비는 자율지정제 때 7만~8만원 수준에서 주기적 지정제로 바뀐 뒤 12만~13만원대로 뛰었다. 매년 220여 개 상장사가 감사인을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 감사계약을 맺는 기업 상당수가 감사비 인상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된다. 최대 수준의 감사 시간을 제시했다가 조금씩 낮추는 식으로 감사 비용을 흥정하는 회계법인까지 나오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른 감사 보수에 항의하자 회계법인이 감사시간을 줄여 총 보수를 낮춰줬다”며 “비용은 줄이긴 했지만 감사보수 책정 기준에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신외감법으로 위험 부담이 커진 만큼 비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 문제가 생기면 지정감사인이 가중 처벌받아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며 “표준감사시간을 어겼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이 더 커질 수 있어서 가이드라인이지만 의무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순기능 살리려면 완급 조절 필요”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회계부문에서 46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61위에 비해 15계단 상승했다.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감사보고서 정정 횟수도 전년보다 14% 줄었다. 금융당국은 “신외감법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비용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는 점이다. 신외감법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 감사비용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예컨대 강화된 내부회계관리 대상 기업은 지난해 자산 2조원 이상에서 올해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됐고 2022년엔 1000억원 이상, 2023년엔 모든 상장사가 적용 대상이 된다. 이 경우 내부회계관리 검증 수준이 ‘검토’에서 ‘감사’로 올라간다. 재무제표 회계감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내부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외감법의 연착륙을 위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회계 투명성을 높인다는 기본 취지엔 공감하지만 코로나19 등 경제 환경을 감안했을 때 단기간에 기업에 큰 충격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백태영 성균관대 경영대 교수(한국회계학회장)는 “신외감법의 방향과 취지는 좋지만 적용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부작용을 줄일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산 1000억원 미만 소규모 기업의 경우 지난해 판매관리비에서 감사보수 비중은 0.78%로 자료가 있는 2002년 이후 최대치”라며 “회계 투명성 향상의 순기능은 인정하지만 이행비용이 기대편익을 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은정/김진성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