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나를 위해 존재"…전태일 옛집 시민 품으로

3천여 명 뜻 모아 대구 옛집 사들인 뒤 '전태일' 문패 달아

보듬지 못하고 넘긴 반백 년의 세월이 남겨진 한옥에 모처럼 온기가 넘쳤다.
12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는 고(故) 전태일 열사의 옛집에서는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그의 이름을 새긴 문패를 거는 기념식이 열렸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의 이재동 이사장은 행사에서 "열사의 영혼이 이 고향 집에서 안식을 찾기를 바라고,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이 집이 많은 사람이 그 뜻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태일의 친구들 측은 최근 4억 3천만 원에 이 집을 샀다. 자금 마련에는 3천여 명의 개인과 200여 개 단체가 함께 했다.

1962년부터 1년간 전태일 열사가 가족과 함께 지냈던 이 집은 생전 그가 "하루하루의 시간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드러낸 곳이다.

198㎡ 규모의 한옥 한 채와 조그마한 텃밭이 딸린 이 집에서 당시 전태일 열사의 가족 6명은 주인집인 한옥 옆 별채에 세 들어 살았다. 세 들어 살던 별채는 그의 가족이 떠난 뒤 허물어져 지금은 무성한 라일락 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녔던 전태일 열사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서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그는 척박한 노동자의 삶을 보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태삼씨는 "이 집을 사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형의 운명이 여기서 결정됐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게 된 동기가 이 집에서 시작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찾은 지인들도 "가족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결국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삶에 있어 이곳이 가장 뜻깊은 곳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