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목수, 300년 고택 기둥 갈라 최고급 소나무茶 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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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이상 수령의 최고급 소나무 '황장목'강릉에는 지어진 지 200~300년 된 고택이 많다. 한옥 기둥이나 문짝을 교체하거나 한옥을 새로 짓는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무를 다루는 제재소가 여러 곳 모인 산업 단지도 조성돼 있다.
차·소금으로 탄생시킨 송림도향 최훈석 대표
고택 해체 작업하던 목수들에서 영감 받아
"한국 대표하는 소나무의 가치 세계에 알리고파"
항암·항바이러스 물질 발견…바이오 영역 확장
강릉의 제재소에서 수십 년 간 일한 베테랑 목수들은 고택을 수리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찻물을 끓인다. 수 백년 간 집을 떠받쳐온 기둥 이나 문틀 안쪽을 갈라 소나무를 대패로 얇게 썰어낸 뒤 물에 우려 마신다.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그 향은 더 깊다. 목수에서 다른 목수들로,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오는 그들만의 최고급 차다. 이 광경을 보고 소나무차를 개발한 이가 있다. 수령 150년 이상, 직경 50cm가 넘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 '황장목'을 프리미엄 차로 탄생시킨 송림도향의 최훈석 대표(35)다. 강릉 출신으로 뉴욕시립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나무이자, 오랜 시간 한국인의 생활 속에 녹아 들었던 소나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국내 차 문화는 수입산이 잠식하고 있다. 유럽산 허브와 홍차, 중국산 보이차와 대나무차, 일본산 녹차 등이 고가의 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임업 4위 국가인 한국은 임산물 자원이 풍부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 대표는 식품공학 박사인 부인 김남희 김남희연구소 대표(34)와 함께 소나무차를 개발했다. 벌목 허가를 받은 소나무 중 150년 이상 수령을 선별, 차가 만들어지기까지 10년이 걸린다. 제재소에서 송진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이를 가져와 또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제재소에서 가져온 뒤에도 껍질을 벗기고 수박 가르듯 갈라 건조한 뒤 숙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일반 차 티백 공정에서는 만들 수 없어 차 티백은 일일이 100% 순면을 수작업해 만든다. 연간 1500박스만 생산해 마켓컬리, 자체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 중이다. 최 대표는 "소나무는 거북선의 자재이자 왕의 가구와 궁궐을 짓던 나무이고, 서민에게는 집과 마루가 되어주던 소중한 나무"라고 말했다.
또 "캐나다의 단풍나무, 핀란드 자작나무, 일본 히노끼 등이 국가를 대표하는 나무로 브랜딩 되어 있지만 한국은 소나무의 가치를 아직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왕이 벼슬을 내린 '정이품송'이 존재할 정도로 특별한 역사와 스토리를 지닌 나무는 세상에 없다"고 강조했다.송림도향은 황장목차 외에도 소나무의 중심부인 '심재'를 태안자염과 블렌딩한 '황장목 심재 소금'을 개발했다. 차와 소금은 풍부하고 독특한 향을 인정 받아 지난 추석 J.W 메리어트호텔의 선물 세트, 미쉐린 레스토랑 스와니예, 옥동식 등에 납품하고 있다. 황장목의 활용 방법은 개발 초기 예상했던 것보다 무궁무진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국립강릉원주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릉 분원 등과 산학연을 맺고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소나무의 항암효과와 항바이러스 효과를 내는 피노실빈 등의 물질을 대량 발견했다. 일반 나무에 비해 나무의 자기 방어물질 함량이 높아 바이오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요즘 더 간편하게 소나무의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소나무가 가지, 뿌리, 옹이(줄기가 나가는 부분) 등 부위마다 향이 다르고 껍질도 부위와 숙성도에 따라 그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통해 엑기스를 추출한 뒤 다른 재료와 섞어 냉차로 즐기거나 알코올에 추출해 술로 즐기는 법도 실험하고 있다.
최 대표는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는 와인처럼 숙성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며 "강인한 생명력만큼 다채롭고 신비로운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