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문재인 정부가 기업이었다면

중소기업을 벼랑으로 떠미는
온갖 악법 밀어붙이면서
"中企·청년 돕겠다" 혈세만 펑펑

비용편익분석 조금만 해도
나올 수 없는 '거꾸로 정부'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문재인 정부가 ‘고졸·중소기업·청년’을 지원하겠다며 조성한 국가장학금을 ‘대졸·대기업·60대’에게도 퍼주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젊은 인재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도입한 이 제도가 변질·오용된 과정은 주먹구구식 예산살포사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졸 청년에게 대학 장학금을 100% 전액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고졸 인재들의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주장이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12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한 이 사업은 그러나 시행 초반부터 엇나갔다. 고졸 중소기업 청년들의 장학금 신청이 예상을 훨씬 밑돈 것이다. 정부는 당황했고, ‘머릿수’를 채우기 위한 편법을 동원했다. 지원 기준을 뜯어고쳐 대기업에 다니는 50~60대 직장인에게까지 ‘국가 청년장학금’을 지급했다. ‘청년일자리사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표에 함몰돼 수요예측과 고용증진효과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사업은 혈세 낭비로 귀결됐다. 자기 돈이라면 이런 식의 ‘아니면 말고’ 계획을 세워 흥청망청 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업이든 비용편익 분석을 하는 게 기본이다.사상 최대 규모였던 올해 예산보다도 8.5%나 더 늘린 문재인 정부의 내년 슈퍼예산안(555조8000억원)에 이런 식의 누수(漏水)가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예산안 가운데 5분의 1이 현금성 지원용(用)”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진단은 그래서 그냥 넘길 수 없다. 97개 항목(110조8933억원)에 이르는 현금살포 예산사업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청년일자리 사업’이다. 청년과 저소득층 실업자의 취업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제공하는 구직촉진수당, 중소·중견기업에 입사하면 지급하는 취업성공수당, 들어간 일터에서 퇴사하지 않고 남아 있을 경우 돈을 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단계별로 현금지원계획을 마련했다. 촘촘하게 짰으니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에 드디어 물꼬가 트일까. 예산정책처는 다른 의견을 냈다. “수혜자들이 받은 돈을 다른 용도로 써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 목표와 성과 간 관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눈먼 돈’으로 오용될 소지가 크다는 경고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반 전 취임하면서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고는 장관급 일자리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그래놓고는 청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재정을 동원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급급했을 뿐, 일자리 환경을 제대로 개선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노력을 한 게 없다. 대다수 청년이 “아무래도 중소기업엔 못 가겠다”고 버티면서 중소기업들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원인은 자명하다.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대기업과 엄청나게 벌어져 있는 임금 격차에서 시작된다.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왕성하게 사업을 펼쳐 ‘미래가 밝은 일터’가 되도록 하는 게 근본해법이다. 그러려면 상당수 중소기업과 원·하청 관계에 있는 대기업 종사자들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중소기업 몫을 덜 가져가야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 본질 문제에 눈감는 까닭은 뻔하다. 대기업 노동조합들로 이뤄진 양대 노총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출범했기 때문이다. ‘노동보호’라는 이름 아래 강행한 최저임금 인상, 주휴수당 의무화, 주 52시간 근로제 등은 취약한 중소기업에 날벼락을 안긴 대신 대기업 노조원들의 지갑을 불려준 조치였음이 분명해진 지 오래다.‘보호’가 아니라 ‘족쇄’를 채우는 제도와 정책의 파상공세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경영 및 채용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 동반자’ 노동기득권 세력에만 귀를 기울여 일자리 생태계를 왜곡하고 망쳐놓은 결과는 사상 최악의 청년 체감실업률(25.4%, 9월 현재)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기업과 청년들을 다 살릴 수 있는 정책에 눈 감고 거꾸로 된 조치만 밀어붙이면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을 펑펑 흘려 쓰고 있다. 이런 무책임과 엉터리가 없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