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규제과학, 준수 혁신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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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이상팔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바이오 분야 규제 패러다임은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의 핵심은 혁신에 있어야 한다. 지금의 규제는 고전적인 규제 방식에 따라 규제 준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탓에 규제를 통해 피규제자가 혁신을 도모했는지, 그 혁신이 시장 혁신과 사회 혁신으로 이어졌는지 등은 주목받지 못했다.
규제로 인한 시장과 사회의 변화가 작지 않음을 고려해볼 때, 기존의 고전적인 규제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다. 앞으로의 규제는 피규제자의 준수 혁신을 장려하고, 시장 혁신과 사회 혁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규제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규제과학* 덕분에 가능해진다. 바이오 분야에서 규제과학의 통합적 평가가 필요한 이유
규제과학은 1970년대 미국 식품의약국(FDA), 환경보호국(EPA) 등 규제기관에서 특정 신제품의 위험을 평가하는 복잡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일본 국립보건과학원(NHS), 유럽의약품안전청(EMA) 등에서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의미가 정립되면서, 사회과학 연구까지 포함하는 다의적 특성을 갖췄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혁신 기술은 민감한 사회적 담론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다방면을 통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해당 기술의 혁신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윤리적 문제 및 공평성 문제까지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적 연구를 포괄하는 다의적 특성을 가진 규제과학은 바이오 분야 정책과 규제의 업그레이드와 혁신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구체적으로 바이오 분야에서 규제과학의 통합적 평가가 기여할 수 있는 점을 세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규제의 부작용 최소화에 도움이 된다. 둘째, 비례성 원칙에 어긋나는 규제를 찾아내고 과잉규제나 과소규제를 적절하게 개선해 균형 잡힌 규제를 설계하는데 지식과 지혜를 제공한다. 셋째, 정보의 질적·양적 확대, 데이터 공개 범위와 규모의 확장 등을 통한 정보공유 활성화를 도모한다. 이 세 가지는 바이오 분야 규제와 진흥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규제의 품질 및 프로세스의 무결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규제과학으로 평가하게 될 정부 규제의 영향은 슘페터적 혁신 개념을 기반으로 두 가지 경쟁적인 방법으로 나뉜다. 준수 부담 방법과 준수 혁신 방법이다. 준수 부담 방법은 피규제기관이 혁신에 투자하던 비용과 시간을 법규에 정한 규제 준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준수 혁신 방법은 규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새로운 혁신 방안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준수 혁신 규제 방법에는 기존 규제의 제약 요인을 우회하면서 발생하는 혁신도 포함된다. 정부 규제가 피규제자에게 준수 부담으로 작용하는지, 준수 혁신을 창출하는지는 정부 규제의 몇 가지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규제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한 실제 사례를 통해 상세히 알아보자.
정부 규제는 준수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정부 규제가 준수 혁신과 준수 부담에 미치는 영향은 규제의 엄격성, 유연성, 정보 불확실성에 의해 결정된다. 엄격성은 규제가 피규제자에게 준수 혁신을 요구하고, 준수 부담을 부과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유연성은 피규제자인 기업이 규제를 준수할 때 가용할 수 있는 집행 경로의 수로 측정된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불확실성은 규제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증진시키도록 하고 있는지 여부를 측정한다. 이런 특성이 바이오 관련 산업체의 준수 혁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사례분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제약산업
제약산업의 경우 헨리 그래보우스키 미국 듀크대 교수는 1977년 신약 개발에서 엄격성이 높은 규제 수준과 규제 지연으로 인해, 규제 준수의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연구했다. 이러한 규제는 소규모 기업보다 준수 비용에 대한 대처능력이 탁월한 대규모 다국적 기업에게 더 집중된다는 연구결과를 덧붙였다. 신약 개발 사업을 선도하는 대규모 기업에게 규제의 영향이 집중되는 것은 제약산업 분야 전반의 경쟁과 시장 혁신에 악영향을 주고, 신약 공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리엘 카츠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2007년 사회 규제의 순기능을 연구했다. 시장에서 규제가 전개될 방향을 예측가능하게 하는 완전한 정보의 증진을 겨냥한 규제가 순기능을 유발하는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시장의 완전한 정보는 기업에게 더 높은 준수 가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혁신 자극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그 몇 가지 예로, ‘사전인가(승인) 심사제도’, 승인 후 문제 발생 시 승인을 취소하는 ‘승인 후 경고제도(post-approval warnings)’, 처음에는 약한 규제로 시작하고 규제 준수가 달성되면 수준을 점차 상향 조정하면서 규제 준수를 유도하는 ‘FDA 규제’ 등이 있다. 해당 제도들이 불량이나 저질을 차단하는 반레몬 기제(anti-lemon devices)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봤다. 즉, 의약품 안전과 효과성 인증 등 정보 증진 관련 규제는 시장에 유통되는 약물의 가치를 증가시키고 제약회사의 혁신 장려로 이어진 것이었다.
②혈액세포 제조산업
혈액세포 제조산업의 경우에도 유사한 연구가 있다. 데니스 개스티노 미국 메이오클리닉 박사는 사전승인 심사과정의 정보 불확실성이 규제 준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주장했다. 그리고는 사전승인심사에 더 완전한 정보 제공의 확대가, 생산자의 규제 준수 가치를 높이는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③의료기기
의료기기 사전승인의 경우 에드워드 로버츠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 교수는 1976년 FDA가 의료기기의 사전 승인조사를 증가시키는 수정 법안을 대상으로 엄격한 정부 규제의 영향을 분석했다.
제약산업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정부 규제는 준수 불확실성으로, 다시 시장혁신 감소로 이어짐을 발견했다. 수정법안 통과 이후 기업 생산성의 가파른 하락과 혁신 감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로버츠 교수는 이러한 추세가 4년 후 오히려 반등된다는 점도 주목했다. 그는 기업이 엄중한 규제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응한 결과라고 반등의 원인을 분석했다.
④유전자 변형 미생물(GEMs)
몰리 앤더슨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유전자 변형 미생물(GEMs) 시장 연구에서 요인이 다른 반등 현상을 발견했다. 엄중한 사회규제가 GEMs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던 중 일정 시간 이후의 추세 반등 효과를 관찰한 것이다.
연구 결과, 이는 의료기기 사전승인의 경우와 달리 반등의 요인이 피규제자보다는 오히려 규제자에게 있었다. GEMs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규제기관의 경험이 함께 증가하면서 규제 명확성과 높은 규제 능률성을 확보한 덕이었다.
⑤바이오 분야의 R&D 투자
바이오 분야 R&D 투자와 관련, 존 버논 미국 펜실베니아대 박사는 의약품 가격을 통제하는 경제 규제가 피규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이를 위해 대규모 제약회사 20개를 대상으로 범국가 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가격 통제 및 수입 규제와 같은 경제 규제는 신약 시장 혁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미국이 해외 평균 수준의 제약 가격 통제 정책을 실행했다면 미국 산업의 연구개발 강도가 현 수준보다 최대 47.5%까지 감소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버논 박사의 추가적인 연구결과도 해당 내용에 힘을 보탰다. 이 연구에서는 미국이 1986년과 2004년 사이에 의약품 가격 통제 정책을 실시한 것을 가정했는데 117개의 신약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 결과를 제시했다. 해당 연구에서 버논 박사는 규제가 시장 혁신 그 자체를 줄인다기보다는 혁신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목적임을 역설했다.
바이오 분야 규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앞선 사례 분석을 통해 각 바이오 분야에서 규제과학의 역할을 볼 수 있었다. 피규제자의 준수 혁신을 장려하는 효율적인 규제 설계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어지는 시장 혁신과 사회 혁신은 결국 최종 소비자인 고객에게 편익으로 제공되고 사회적 편익을 실현한다. 그럼 바이오 분야의 규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첫째, 규제자는 단순히 규제의 엄격성뿐만 아니라 규제의 갑작스런 제정과 시간적 여유를 두는 점진적인 규제 간의 차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런 제정이 유발한 급진적 혁신은 많은 비용과 위험을 수반하지만 그만큼 점진적 혁신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반면 점진적인 규제는 안전성을 확보하며 낮은 속도의 준수 혁신이 이뤄지고, 그만큼 낮은 수준의 이익을 창출한다. 둘 사이의 차이는 피규제자의 성향에 따라 또 다른 결과로도 이어진다. 피규제자가 급진적 규제에도 급진적 혁신을 도모할 역량이 없다면, 오히려 규모와 재원에 경쟁력이 큰 특정 피규제자에게 이익이 집중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자는 규제의 강도에서 오는 반향을 잘 파악하고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규제는 지속적으로 유연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피규제자인 기업이 가용할 수 있는 실천적 재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인센티브 기반, 성과 표준 기반 등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규제를 제시한다면, 기업은 비용 효율적이면서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준수 혁신을 창출할 것이다.
이는 명령지시적 규제에서 발생하는 독점적 보호 현상이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부수적인 이점도 있어 바이오 산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다방면으로 도움이 된다. 즉, 규제의 초점은 규제가 특정 피규제자를 통제하는 목적인 일방적 규제 그 자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시장과 사회 전체 혁신에 있어야 함이 규제자의 유연성 측면에서 중요한 점이다.
셋째, 규제자는 시장에서 규제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향상시켜야 한다. 기업의 준수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피규제자는 명확한 규제 정보를 감안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규제 준수 대안을 찾게 된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선택한 대안은 기대 수익성에 대한 판단도 모호해 피규제자는 혁신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경영적 선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기업의 제품과 프로세스의 규정 준수 여부, 준수를 위한 비용과 시간의 투자 규모의 크기를 가늠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해당 대안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규제 정보의 불확실성 증가는 명백하게 혁신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온다.
규제자인 정부가 일방통행으로 규제의 틀을 짜고 세부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은 사라졌다. 도끼 대신에 정밀로봇메스를 써야 한다. 규제자는 매우 높은 지적, 과학기술적 정보에 기초해 판단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들의 주도적인 참여와 헌신, 그리고 공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연구자, 개발자, 산업계는 각자의 요구와 고충을 정책담당자에게 절절하게 전달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한편 더 나아가 혁신을 위한 민관파트너십을 공동설계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규제과학이란?
규제과학은 정책과 과학기술이 혼합된 독특한 종류의 과학이다. 규제입안자와 과학자는 서로 독립된 ‘정책’과 ‘과학’으로 분리된 것이 아닌 정책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하나의 영역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과학의 목적은 규제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거나 정책 결정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과학은 규제의 모든 영역에서 정책 결정의 과학적 기초가 된다.
바이오분야에서 규제과학은 규제 대상 제품의 안전성, 효능, 품질 및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 표준 및 접근 방식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규제 방법,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법률과 표준, 기준, 지침의 간소화, 중복 기능과 비합리적인 요소 제거는 물론 바이오기술에 대한 이해당사자들 간 이해력을 높이고, 신흥 과학기술의 위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 확립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연구체계를 의미한다.
김태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상팔
고려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까지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안전행정팀장으로 근무했다.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전문연구원,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정책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