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휴원 통보 일주일 전 유치원의 '수상한 명의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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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놀이학교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 학부모들 의심서울 잠실 부근의 한 유치원이 최근 휴원(휴업)을 일방적으로 알려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유아교육법 등 관련 법에 따르면 일방적인 휴원을 해선 안되지만 처벌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유치원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기한 휴원에 학부모들 '청천벽력'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잠실 근처의 한 사립유치원은 지난달 21일 학부모 간담회를 통해 내년 2월을 기점으로 휴원한다고 공지했다. 건물이 오래돼 누수와 누전 위험이 있어 리모델링을 한다는 게 유치원측이 설명한 휴원 사유였다.해당 유치원의 학부모들에 따르면 유치원 측은 처음에는 휴원 기간을 1년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공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며 무기한 휴원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사실상 폐원하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휴원하냐는 학부모들의 질문에 유치원 측은 공지문을 통해 “현재로서는 공사 범위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사 계획과 기간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재원 중인 70여명의 원아들은 근처 유치원 등으로 전원해야 하지만 쉽지 않아 학부모들은 당혹스러운 상태다. 학부모들의 반발에도 유치원 측은 노후한 건물 문제로 휴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학부모들은 휴원한다는 유치원이 부동산 명의변경을 한 점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 따르면 해당 유치원은 첫 간담회 일주일 전인 지난달 14일 건축물 명의를 유치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영어식 이름으로 바꿨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일반 유치원 대신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영어유치원과 놀이학교는 사설학원이기에 유치원 관련 법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위해 도입된 에듀파인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학부모들의 의심이 커지는 것은 이 유치원이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교육청 감사에서 해당 유치원의 설립자 이모씨가 개원 때 쓴 물품구매비와 공사비 등을 돌려받는다며 2009~2011년 6차례에 걸쳐 교육비 계좌에서 5100만원을 빼간 것이 드러났다. 이씨의 남편 김모씨는 경기도 용인에 있던 동명의 유치원 설립자로, 지난해 경기도교육청 감사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폐원했다. 당시 재원한 원아의 학부모는 “원래 폐원 얘기는 없었으나 에듀파인 도입 등의 문제로 폐원한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유치원 측의 입장을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상 폐원인데...교육청 "폐원 아니다"
아직도 허술한 법이 학부모들을 울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8년 교육부는 유아교육법에 근거해 유치원장이 휴업을 하고자 할 경우 유치원 운영위원회의 자문을 거치고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결정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그러나 이 지침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의 강도가 높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원을 강행해도 교육당국 차원에서의 고발, 정원 축소, 재정 제한 조치 정도만 가능하다.유치원의 휴원이나 폐원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학부모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지지 않는다. 지침에는 사전에 충분한 기간을 두고 휴업에 대한 고지를 해야 한다는 부분도 없다.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다른 사립유치원의 학부모들도 ‘난데없는 봉변’에 충분히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해당 유치원이 다소 급박하게 휴원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휴원을 강행한다면 고발과 재정 제한을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폐원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유치원 측에서 휴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 폐원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시민사회에서는 교육 당국이 돌봄 대란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에듀파인 도입 등으로 유치원 사업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립유치원들이 잇따라 폐원 수순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교육 당국이 ‘지침대로 하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말고 유치원의 휴·폐원을 막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