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은 만인의 것"…증권가 한복판 클래식 살롱 '신영체임버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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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랑하는 공간 - 김봉렬 한예종 총장서울 여의도 증권가 한복판에 있는 신영증권 1층. 로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로 10m, 세로 14m의 아담한 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대 전면의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엔 미국 댈러스에 있는 콘서트홀 ‘메이어슨 심포니센터’의 전경이 시선을 잡아끈다. 2018년 문을 연 클래식음악 전용홀 ‘신영체임버홀’이다.
음악이 그리울 때 찾는 곳
맞춤 제작된 獨 '토네트' 의자에 앉아
연주자와 서로 교감하며 음악 감상
울림과 흡음이 조화된 공간
독일 명품의자 ‘토네트’에서 맞춤형으로 주문 제작한 객석 의자에 앉아 빈 필하모닉의 공연 실황을 감상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생생한 울림이 귀에 꽂힌다.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음악이 그리울 때 종종 이곳을 찾는다. 김 총장은 “음향을 제대로 구현해내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체임버는 작은 방이라는 뜻”이라며 “이곳에선 살롱에서 연주자가 관람객 몇십 명을 모아놓고 가까이 앉아 서로 교감하며 연주하던 음악의 본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신영증권과 오랜 인연으로 신영체임버홀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문 역할을 해왔다.생생한 음향이 구현된 건 음향학 권위자 조영재 박사의 세세한 설계 덕분이다. 벽면은 울림에 좋은 오크나무를 써서 소리가 잘 반사되고 모아지도록 했다. 회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벽면의 반대편은 흡음 재질로 구성됐다. 음악 장르에 따라 벽면을 돌려 울림 정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벽면엔 세계 3대 스피커 시스템 중 하나로 꼽히는 메이어사운드가 자리잡고 있다. 무대 전면에 놓여 있는 명품 피아노 ‘스타인웨이&선즈’가 공간의 품격을 더한다. 김대진 한예종 교수가 직접 고르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연주해본 뒤 “연주자가 특별히 할 게 없을 정도로 최고의 소리를 낸다”고 극찬한 피아노다.신영체임버홀은 월 2~3회 음악가들의 기획 공연을 열고 있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쇼팽 콩쿠르 우승 경력의 베트남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 등이 이곳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모든 기능 집합된 유기체적 건축”
서울대 건축학과 76학번으로 건축학 외길을 걸어오다 2013년부터 한예종을 이끌고 있는 김 총장은 신영체임버홀에서 공간과 예술에 관한 얘기를 풀어냈다. 김 총장은 “도시 건물 1층은 만인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선 대도시 빌딩들의 1층을 시민들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지상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그는 “적어도 1층은 공용 재산이라는 개념”이라며 “미국 뉴욕시는 1층을 개방하면 건물 몇 개 층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혜택을 준다”고 설명했다. 주요 빌딩이 1층을 모두 막아버리면 시민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는 만큼 도심 건물 1층의 공공성에 대한 도시적 담론이 이어져야 한다는 게 김 총장의 생각이다.“도시에 비슷한 기능을 집적한 기계적 건축에서 모두가 섞여 있는 유기체적 건축으로 추세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여의도는 업무지구, 분당은 주거지로 조성된 것처럼 20세기 도시 정책은 철저하게 분업화 중심이었죠. 이제는 주거공간과 사무공간, 쇼핑공간이 한곳에 모여 있는 융합적인 개념의 도시로 변모해야 합니다. 신영체임버홀은 비즈니스 공간 안에 예술 공간이 융합된 대표적인 곳이죠.”
예술 공간도 기존에 소수를 위한 대형 공간이 중심이었다면 다수의 소형 공간 중심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총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도시에 3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하나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한꺼번에 관람객이 모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100명을 수용하는 공연장 30곳을 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동네 영화관과 미술관, 서점 등 소규모 문화공간이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다.김 총장은 “문화는 같이 즐기는 층이 있을 때 싹 튼다”며 “코로나 시대 예술을 문화로 승격시키려면 스무 명 남짓이 모여 함께 향유하고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