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에 대기업들 잇단 '러브콜'

친환경 플라즈마 활용해 표면처리
반도체용 EUV 검사장비 국산화

창업 1년 만에 대기업 납품
'표면처리 전문' 이노션테크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주목
이솔, 장비가격 3분의 1로 낮춰

홍정기 이노션테크 대표(왼쪽)가 직원과 함께 친환경 플라즈마 표면처리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이노션테크 제공

경기 시흥에 있는 스타트업 이노션테크. 이 회사 창업자 홍정기 대표의 책상 달력을 보면 지난 10월 23일에 새빨간 동그라미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과 공급 계약을 맺은 날이다. 지난 7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와 처음 얼굴을 맞댄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수주까지 성공했다. 홍 대표는 “샘플 평가가 꼼꼼하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돼 창업 1년 만에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노션테크는 친환경 플라즈마를 활용한 표면처리 전문 업체다. 홍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취업해 15년간 ‘화학재료’ 한우물을 파오다 지난해 11월 회사를 세웠다. 화학재료를 이용한 표면처리 기술 적용처가 무궁무진하고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아모레퍼시픽과 연이 닿은 것은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20곳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소재·부품·장비 분야 스타트업 100곳을 육성하는 사업에 뽑혀서다. 이노션테크는 20개 스타트업 가운데 바이오·화장품 분야에서 1위를 했다. 중기부는 업체별로 최대 2억원 규모의 사업지원금을 제공하고, 최대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대출해준다.

이노션테크가 아모레퍼시픽에 공급하는 기술은 화장품 금형에 기능성 나노 박막 소재를 증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금형 성능과 내구성이 함께 개선돼 제품 품질이 향상된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금형 사용 주기가 길어져 원가절감이 가능해지는 것도 장점이다.

아모레퍼시픽과 거래를 튼 뒤 다른 여러 기업과의 공급 협상이 잇따르고 있다. 홍 대표는 “스타트업이 처음 기술을 선보이면 검증이 안 됐다는 판단에 대부분 1호 고객이 되기를 주저한다”며 “아모레퍼시픽이 길을 열어 주면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업체에도 곧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노션테크의 올해 예상 매출은 10억원대다. 잇따른 주문 덕택에 5년 후 매출 5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병국 이솔 대표(왼쪽)가 이동근 부사장과 함께 극자외선(EUV) 마스크 리뷰 검사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이솔 제공

반도체용 극자외선(EUV) 마스크 리뷰 검사 장비를 제조하는 스타트업 이솔은 반도체 대기업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24년간 근무한 김병국 대표가 2018년 1월 창업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유명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 출신 인력을 포함해 전 직원 17명 중 절반가량이 반도체 전문가다.

이솔이 생산하는 것은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마스크에서 찾아낸 결함을 그냥 둘지 말지 판단하는 장비다. 한 대 가격이 1000억원에 육박한다. 독일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솔 제품은 독일 업체에 비해 가격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데 성능은 99% 이상 똑같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미 국내 한 반도체 대기업이 이솔 장비의 성능 평가를 끝내고 공급 협상을 하고 있다. 국내 또 다른 반도체 기업도 지난달 성능 평가를 시작했다. 성능 평가에는 6개월가량 걸린다. 이솔은 외국 반도체 대기업과도 협상 중이다.

이솔은 중기부가 선정한 유망 소부장 스타트업 20곳 가운데 스마트 엔지니어링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이솔 직원 모두가 반도체 관련 내공이 상당하다”며 “해외 어떤 업체에도 지지 않는 기술에 관한 자부심에 대기업들도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잘나가는 대기업을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24년간 한 가지 일만 하니 업무의 정점에 이를 순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장이 더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이 보통 30년 열심히 일한다고 치면 그중 6년은 도전하는 데 쓰는 것도 의미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이솔 매출을 3년 후 500억원, 5년 후 2000억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김 대표의 청사진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