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댄서에서 뮤지컬 배우로…주호 "항상 배우는 자세로"

뮤지컬 '고스트' 지하철 유령으로 강렬한 존재감
뮤지컬 '고스트'에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는 지하철 유령이다. 죽어서 영혼이 된 남자 주인공 샘에게 "여긴 내 구역이야"라고 소리치며 물건을 집어 던지는 지하철 유령은 극의 긴장감을 증폭시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역이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 지하철 유령을 연기하는 배우는 주호(37)다.

무대에 서는 시간은 짧지만, 날카로운 지하철 소음을 뚫고 흐르는 빠른 비트에 맞춰 화려한 춤과 랩을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난달 6일부터 내년 3월 14일까지 '고스트' 공연이 열리는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최근 만난 주호는 배역만큼이나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직 뮤지컬 관객들에게는 낯설지만, 스트리트 댄스계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유명하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돋보이는 이력도 '춤'이다. 주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해 고등학생 때 댄스 프로팀인 '일루션'에 입단했다.

1999년 엠넷 비트업 힙합 페스티벌 대상부터 2007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스코츠맨 5스타까지 국내외 각종 페스티벌에서 상을 휩쓴 팀이다.

그를 뮤지컬 무대로 이끈 작품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다. 대사가 없는 무언극의 배우로 참여하다 안무 감독도 맡게 됐다.

이후에는 '인 더 하이츠' 앙상블로 합류하면서 뮤지컬 매력에 빠지게 됐다.

주호는 "'인 더 하이츠' 첫 공연을 올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아 이게 뮤지컬이구나', '이게 제대로 된 공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조명, 안무, 연출, 오케스트라 한 명, 한 명이 집중해 공연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체계적이고 정직하게 느껴졌다"고 뮤지컬의 매력을 설명했다.
뮤지컬에 대한 열정은 '고스트' 오디션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지하철 유령 지원자는 지정곡을 불러야 했는데, 주호는 직접 비트를 만들어와서 선보였다.

끝까지 지정곡은 부르지 않았다.

주호는 당시를 회상하며 "뻔뻔했다"고 웃었다.

그는 "심사위원 마음에 안 들어서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보여주고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뭐든 할 때는 확실히 하고자 하는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주호를 두고 제작진은 고민이 많았다.

주호가 눈에 띄는 배우란 점은 분명했지만, 여러 배우와 스태프와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뮤지컬 무대에 잘 스며들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주호의 지하철 유령은 최선이었다.

차선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팀에 합류한 주호는 우려와 달리 특유의 성실함으로 팀에 녹아들었다.

1시간씩 일찍 연습실에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안무를 연습한다.
주호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로 꼽힌다.

춤을 잘 춰서가 아니라 발전하고 싶은 열정과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열린 마음 때문이다.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는 주호를 두고 "안주하는 성격이 아니다", "끊임없이 시도 한다"고 평가했다.

스트리트 댄스 분야 정상에 올랐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려 있는 그는 "춤에서도 닫혀있지 말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잘하는데 네가 날 가르쳐'라는 마음으로는 스펙트럼을 넓히지 못한다"며 "공연 리뷰도 한 줄이라도 있으면 흡수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실 주호도 처음부터 착실하고 열린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대만 해도 '노력 안 하는 천재' 형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바뀐 것은 댄스그룹의 리더, 공연의 안무 감독 자리에 앉으면서다.

주호는 "내가 깨어있지 않으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책도 많이 읽고, 발레와 오페라 등 새로운 분야의 폭을 넓혀갔다"고 전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거침없는 그의 최종 종착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뮤지컬 배우, 안무 감독, 댄서 다 재밌고 매력 있다"며 "항상 배우는 자세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자리에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