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KTX구간' 6600억 들여 정비해놓고 '8조 사업' 재추진 [세금 먹는 하마]

⑨-대구 도심 KTX 르포

지하화, 대구 숙원이었지만 2006년 지상화로 결론
2006년부터 올해까지 6600억원 들여 환경정비 사업
여전히 지하화에 미련…국토부 "비용 대구서 부담해야"
지난 20일 <한경닷컴> 취재진이 찾은 동대구역의 모습.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세금 먹는 하마]는 전국 팔도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곳을 찾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보고 취재한 내용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대구 도심을 관통하는 KTX의 지하화. 지역 정가의 오랜 염원으로 꼽힌다. 지난 4·15 총선 당시에도 KTX 서대구고속철도역~동대구역 구간(총 연장 14.6㎞) 지하화 공약이 등장했다.

대구 KTX 지하화 사업은 2000년대 초반 KTX 건설 과정에서부터 얘기가 나왔으나 무산됐었다. 지하화를 재추진 중인 대구시는 이달 12일 예비타당성 용역비 관련 예산 20억원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문제는 이미 국비 6628억원을 들여 KTX 대구 도심 통과 구간 환경 정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지하화가 추진될 경우 매몰되는 비용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지하화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일 동대구역에 KTX가 들어오고 있다.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6600억 들여 진행한 환경 정비 사업

<한경닷컴>은 지난 20일 6628억원을 들였다는 KTX 대구 도심 통과 구간 환경 정비사업 현장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KTX에 탑승해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역에 내리자마자 꽃들로 가득한 공원이 보였다. 바로 '대구 도심 구간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었다.대구 도심 구간 정비사업은 KTX가 통과하는 철로변에 녹지나 도로를 조성하고, 지하차도 등 주요 입체교차시설을 전면 정비하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KTX가 대구 도심을 달리기 시작(2004년)한 지 2년이 지난 2006년부터 사업이 진행됐다. 공사는 올해 1월에 종료됐고 사업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대구시는 내년 1월 사업 정산에 들어간다.
지난 20일 &lt;한경닷컴&gt; 취재진이 찾은 대구 북구 도심철도 인근 녹지의 모습. 해당 녹지는 KTX 대구 도심 통과 구간의 환경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도심 구간 지상화로 결정된 뒤 진행된 정비사업은 경부선 철도를 따라 노후가옥 철거와 철로변에 녹지대와 측면도로를 신설하는 공사로 진행됐다. 다만 철로변에 조성된 녹지는 다소 아쉬웠다. 시민 산책로 역할은 하고 있었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채 방치된 모습도 곳곳에 보였다.

관련 지하차도 건설공사는 8곳(서평·평리·비산·원대·태평·칠성·동인·신암)에서 진행됐다. 지하차도에 대한 시민들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인근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택시기사 박모(57) 씨는 "도로들 보면 나름 정비가 됐다는 인상이 있다. KTX 때문에 시끄럽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몇조씩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lt;한경닷컴&gt; 취재진이 찾은 대구 북구 태평지하차도의 모습. 태평지하차도는 KTX 대구 도심 통과 구간의 환경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수천억 사업 완료하자마자 8조짜리 지하화 추진

지하화 사업 논의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토교통부가 KTX 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 수립 시 대구 도심 통과구간을 지하화하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1993년 1차, 1995년 2차 등 두 차례에 걸쳐 결정이 번복됐다. 대구시가 2004년 시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국토부에 지상화 의견을 제출하면서 2006년 8월 지상화로 최종 확정됐다.

이후 지역사회에서는 도심 통과 구간에서 소음과 진동으로 인한 피해와 함께 철로로 인한 도심단절로 도시 개발에 많은 지장이 초래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십수년 수천억 혈세를 들여 지상화에 따른 환경 정비사업을 마치자마자 다시 지하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지난 20일 &lt;한경닷컴&gt; 취재진이 찾은 동대구역의 모습. /사진=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 8조7000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대구시 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대구시는 부산시가 KTX 구간 지하화를 추진하며 '한국판 뉴딜' 지원 대상으로 언급되는 점을 근거로 국비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지하화를 위한 예타 용역비 예산 20억원을 확보해 고무된 상태다.

하지만 국토부는 단호한 입장이다. '철도의 건설 및 철도시설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 상 이미 완성된 시설에 추가 변경이 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부담을 해야 하는 원칙을 내세웠다.
지난 20일 대구 도심을 관통하는 동대구역 인근 철도의 모습.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지하화 사업을 위한 용역비도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과정에서 재정 당국 협의를 거쳐 반영됐다는 게 국토부 입장. 지하화가 당장 추진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 : 이미 완성된 철도의 변경을 원하는 경우 원하는 지자체 쪽에서 비용을 내도록 돼 있다. 용역 예산도 사실 재정 당국과 같이 짜는 것이다. 정부안에는 없었는데 지난해 예산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희망하는 의원들이 연구용역 예산 20억원만 잡아놓아 그것만 진행되는 상황이다. 철도가 혐오 시설은 아닌데, 철도역은 원하면서 철도 레일은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lt;한경닷컴&gt; 취재진이 찾은 대구 북구 도심철도 인근 녹지의 모습. 해당 녹지는 KTX 대구 도심 통과 구간의 환경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영상=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대구=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