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호주에 14개 정책 취소 요구…"한국도 남의 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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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호주 14개 정책 철회하라" 문서 공개
'미국 동맹국' 상대 압박 본격화 해석도
韓 '균형 외교' 또다시 시험대로
제2의 '사드 사태' 발발할까 우려도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 중국은 적이 될 것이다. 진지하게 반성하라."중국이 반중(反中)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호주 정부에 마지막 경고장을 꺼냈다. 호주도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양국의 대립이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17일(현지시각) "호주 정부는 이 정책들을 당장 금지하라"며 14건의 정책 목록을 현지 언론에 공개했다. 호주가 홍콩과 대만, 신장, 남중국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중국의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고도 했다. 경제적 보복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협박성' 메시지도 담았다.호주 언론들은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잇달아 보도했다. 더불어 구체적으로 목록까지 공개한 것을 두고 호주 뿐만 아니라 비슷한 행보를 걷는 다른 국가에 대한 경고도 포함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동맹국을 상대로 압박이 본격화됐다고 보는 것이다.
中, "코로나 기원 조사, 화웨이 금지 당장 취소하라"
20일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일부 현지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중국과 호주 양국 간 분쟁에 관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양국 관계가 악화한 원인으로 지목된 14개 사안을 지목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아픈' 대목들인데, 호주가 이를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중국은 △ '신장,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한 호주의 끊임없는 간섭'을 문제로 꼽았다. 호주는 이들 지역 문제에 관한 다자간 포럼을 이끌고 있다. 중국은 또 △호주가 친미 행보를 이어가며 국제적으로 반중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점, △증거도 없이 막연하게 중국을 사이버 테러국으로 의심하는 점 △ '호주 언론의 적대적 보도가 이어지는 점'도 지목했다. 이어 △호주 정부가 반중(反中) 씽크탱크에 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외국의 내정에 공공연하게 간섭하며 △정상적인 중국의 호주 투자 활동을 '보안'을 이유로 막는 점 등도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호주 5G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빅토리아 주정부의 중국 일대일로 참여를 막았다는 구체적 내용도 포함됐다.
이밖에 △중국의 남중국해 소유권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UN연설 △호주 정치인의 중국 정부 비난과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 △중국 언론인과 학자에 대해 기습적으로 비자 취소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코로나19의 기원 조사” 주장 등도 당장 철회하라고 했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해당 문서를 전달하면서 "중국은 매우 화가 나 있다.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 중국은 적이 될 것"이라며 "호주가 이 리스트에 있는 정책들에서 물러난다면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중국대사관이 호주 언론에 전한 문서에 언급된 내용은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같은 날 양국 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힌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오 대변인은 지난 17일 정례브리핑에서 "호주는 중국과 관련한 잘못된 조치들을 했고, 그것이 양국 관계가 악화된 근본 원인"이라며 "호주는 책임을 회피하고 비껴가기보다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중국 대사관의 의도적인 외교문서 유출이 호주에 대한 중국의 외교 전술의 변화를 경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당 매체는 현 상황에 대해 "호주를 향해 중국이 새로운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국 측 문서는 호주가 외교적 냉각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가 호주의 반중(反中) 전략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국, 일본 등 다른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전술을 변경하라는 압박으로도 해석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경고에도 호주 정부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호주는 미국도 중국도 그 누구도 아닌 우리나라의 국익에 의해 법과 규칙을 설정할 것이다"라며 "우리가 어떻게 외국인투자법을 정하고 5G 네트워크를 구축할지, 우리 제도를 어떻게 운용할지 등의 문제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호주의 가치, 민주주의, 주권은 무역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韓 '균형 외교' 또다시 시험대
양국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중 관계에서 '외줄타기'를 이어오고 있는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호주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자 정서적 유대감이 강한 대표적인 나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호주는 수출의 40%, 국내 일자리 13개 중 1개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도 2018년 기준 중국의 5대 수출국이다. 중국은 홍콩을 제외할 경우 한국에서 가장 많은 물품을 수입하는 국가이기도 하다.과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에 시달렸다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2017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이어진 사드 사태를 통해 강력한 경제 보복에 놓인 바 있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연이어 직격탄을 맞았다.
이 같은 중국식 경제보복은 올해 호주에서 재현됐다. 호주가 화웨이를 배제하고 미국이 제기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거들자 지난 4월 호주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호주 여행과 유학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호주를 본보기로 계속해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미국 동맹국 전체를 겨냥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국이 미중 관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된 상황에 놓인 것도 위기 요소로 지목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블록 주도권 다툼 속에 한국의 '줄타기 외교'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빠지고 중국 주도로 체결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 한국이 15일 서명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중국 견제용으로 구상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해 한국에 가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문제는 TPP와 RCEP가 미국과 중국이 각각 아태 경제블록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상징적인 FTA라는 것이다.정부는 현재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경제적 협력도 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TPP와 RCEP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국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양쪽 모두에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TPP를 통한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면서 한국에 가입을 요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쉬리핑 중국사회과학원 동남아연구원은 최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바이든은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TPP에 다시 합류할 것"이라며 "TPP와 RCEP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국이 선택을 요구받는 일이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 및 적성국 모두와 맞섰다면, 바이든은 유일한 위협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경제와 통상을 비롯한 인권과 환경 문제 전반에서 동맹 간 연대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 예측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정부는 계속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미중 관계 사이에서 유연한 외교 전략을 이어가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미중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안보, 경제, 지정학적 특성 등 모든 부분에서 미중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당장은 줄타기 외교를 지속해야 한다"며 "눈치만 보라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심으로 외교 전략을 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양승함 전 교수는 "국제 관계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협력하는 국가들과 소통 채널은 유지하면서 어떠한 사건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미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도 등 아세안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감으로써 여유 공간을 갖춘, 다변화한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