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굴기에 170조원 쏟아붓고도…中 메모리 점유율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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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 힘 빠진 중국 반도체산업중국의 ‘반도체 굴기(起·떨쳐 일어섬)’가 주춤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14년 이후 1조위안(약 170조원) 규모 기금을 자국 반도체산업에 쏟아부었지만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시장점유율 0%’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자급률(자국 생산 비중) 역시 10%대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무역적자는 지난해 250조원까지 커졌다.
한계 부딪힌 官주도 반도체 육성책
최근엔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그룹 칭화유니마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중국 반도체산업의 허상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허상 드러난 중국 반도체
2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14년 6월 ‘반도체산업발전추진요강’을 발표하고 반도체 굴기에 시동을 걸었다.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2020년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 7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자급률은 15.6%다. 2017년부터 3년 연속 15%대에 머물러 있다. 자국 제조 기반이 약해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지난해 중국은 반도체 무역에서 2280억달러(약 254조원) 규모 적자를 냈다.
지난 16일엔 칭화유니가 만기가 돌아온 13억위안(약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칭화유니는 메모리반도체 기업 YMTC(양쯔메모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중국 메모리반도체의 상징’ 같은 기업이다. 중국 교육부가 사실상의 최대주주인 칭화유니가 디폴트에 빠지자 업계에선 “중국 반도체산업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산했다는데 시장엔 제품 없어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힘이 빠진 가장 큰 이유로 ‘관(官) 주도 정책의 한계’와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꼽는다. 중국 지방정부는 관내 반도체 기업들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2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만든 기업이 64단 제품을 개발할 때 지방정부가 추가로 투자하는 식이다.돈을 더 타내기 위해 중국 기업들은 양산(상업화)이 불가능한 제품을 들고 나와 “개발에 성공했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장 신축에 25조원을 투자한 칭화유니는 자회사 YMTC의 ‘32단 3D 낸드플래시 자체 개발’(2016년), ‘64단 낸드 대량 양산’(2018년) 등에 대해 ‘획기적인 성취’란 수식어를 붙여 소개한 바 있다. 중국 D램 업체 CXMT는 ‘LPDDR4’ 모바일 D램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고성능, 저전력 제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다.한국 반도체업계에선 이들 제품이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통 기업들은 경쟁사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제품을 구입해 분해하는데, 중국 제품은 구할 수조차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중국 지방정부를 속여 보조금을 타내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고난도 기술을 연습하다 보니 실력이 늘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나오는 데 100일…기술장벽 높아
막대한 자금력만으로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반도체산업의 ‘진입 장벽’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더디게 하고 있다. 산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를 투입해 제품이 나오기까지 약 100일이 걸린다. 노광(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것), 식각(그려넣은 회로대로 깎는 것) 공정 등엔 특히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3~5일 걸리는 LCD(액정표시장치)나 40일 정도 소요되는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등에 비해 반도체의 기술이 난도가 높다는 의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는 LCD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요구되는 기술력의 수준이 높다”며 “최근엔 월 웨이퍼 투입량 10만 장 규모의 공장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조~20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고 설명했다.중국이 전문 반도체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수십억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대만 난야, 일본 엘피다 등에서 최고위 경영진을 영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허리’ 역할을 하는 중간 관리자급을 데려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한국 반도체기업들은 중국 반도체 업계의 상황에 한 숨 돌리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중국 정부 지원금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시장 진입 선언에 크게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박 교수는 “중국 반도체기업들은 당분간 제품 개발과 양산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반도체를 포기하진 않을 것인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