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에서 신약까지…종합 생명공학 기업으로 발돋움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CT-P59’의 예방 임상시험을 개시하며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확률은 100%가 아니지만 확신은 100%다.”

200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바이오기업 제넨텍을 찾았을 당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후 서 회장은 제넨텍 직원과 만난 자리에서 바이오시밀러를 만들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제넨텍은 당시 유방암 치료 바이오의약품 허셉틴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서 회장은 제넨텍에 허셉틴 기술 이전을 제안했다. “2015년이면 특허 만료가 시작되니 그 전에 의약품수탁생산(CMO)을 해주겠다”고 했다. 제넨텍은 당연히 거절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서 회장이 이끄는 셀트리온은 허셉틴의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허쥬마’를 비롯해 자가면역치료제 ‘램시마’와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등을 미국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그 사이 제넨텍은 로슈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얻은 아이디어

항체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은 셀트리온이 만들기 전엔 미지의 영역이었다.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제넨텍을 방문하기 직전 나온 것이다. 대우자동차에서 서른넷에 최연소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서 회장은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1999년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그때 동료 6명과 차린 것이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이다. 서 회장은 넥솔 창업과 함께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업을 했다. 경영 컨설팅, 식품 수입업, 장례업 등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서 회장은 바이오 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서 회장은 바이오산업 메카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사람을 만났다. 낮에는 바이오기업을 찾아다니고 밤에는 샌프란시스코만 피어39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면서 만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블룸버그 박사와 토마스 메리건 스탠퍼드대학교 에이즈연구소장 등에게 바이오시밀러 생산이란 아이디어를 접했다.

서 회장은 고가의 바이오의약품 특허가 풀리면 효능과 안전성은 동등하면서도 가격은 낮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질 것이란 결론을 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 좋았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의약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복잡한 화학식으로 만든 합성의약품과 살아있는 세포와 단백질, 유전자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바이오의약품이다. 합성의약품은 보통 알약 형태이고, 바이오의약품은 액체 원액을 주사로 맞는다. 합성의약품의 가장 큰 단점은 부작용이 있다는 것. 아픈 부위를 잡기 위해 멀쩡한 부분까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이런 단점을 보완한 2세대 의약품이다.

셀트리온 이전 회사들은 바이오시밀러 사업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이 임상을 처음부터 해야해 개발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트리온은 그 판을 뒤집었다. 제네릭의 시대를 열었던 글로벌 제약사 테바와 같은 선구자인 셈이다. 꽤 많은 비용이 드는 개발비를 고려하더라도 이미 오리지널 제품보다는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은 딱 맞아 떨어졌다. 신약을 만드는 것보다 바이오시밀러를 만들 확률이 높다는 것도 작용했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전문 회사 셀트리온은 이렇게 탄생했다.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나온지 5년째인 2017년 4분기, 램시마는 유럽 시장에서 레미케이드의 점유율을 앞질렀다. 글로벌 제약업계 일대 파란이 일었던 순간이다.

램시마SC 출시로 신약 개발 성공

바이오시밀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 오리지널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의 1호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는 약값을 약 30% 낮췄다. 류머티즘 등 만성 질환 환자 대부분은 평생에 걸쳐 약을 먹는다. 사람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일년에 평균적으로 두 병씩 8회 주사를 맞는다.

2011년 말 램시마가 나오기 전 한국 환자들은 존슨 앤드존슨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레미케이드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한 병의 보험약가는 55만7732원. 류머티즘관절염 성인환자의 경우 한 회 2병 정도의 주사를 맞는다. 이런 걸 고려하면 한 해 약값으로만 약 892만 원을 썼다. 2012년 9월 한국시장에 램시마가 출시된 이후는 달라졌다. 당시 램시마 한 병의 보험약가는 37만892원으로 매겨졌다. 일년에 쓰는 비용은 동일 기준으로 593만 원이다. 299만 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셀트리온은 또 한 번의 새 역사를 쓴다. 작년 9월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집에서 맞을 수 있는 램시마인 ‘램시마SC’를 허가받은 것이다. 램시마SC는 인플릭시맙 성분의 약물 중 유일한 피하 주사 제형이다. 인플릭시맙은 체내 정상 조직의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종양괴사인자의 움직임을 저하시켜 주는 성분이다. 이전까지 레미케이드나 램시마는 정맥주사 방식으로 투약을 했다. 정맥주사는 환자가 2~3주마다 병원에 가서 2시간 이상 맞아야 한다. 램시마SC는 피하주사 방식이다. 당뇨병 환자가 맞는 인슐린 주사처럼 환자가 직접 자기 몸에 5분 간 놓으면 된다.

포스트 코로나 준비하는 셀트리온

셀트리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 초기부터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회사에서 신약 개발 회사로 다시 한번 진화한 것이다. 속도도 빠른 편이다. 글로벌 상위 제약사 가운데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회사는 리제네론과 셀트리온 등 일부다.

셀트리온은 현재 1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오는 9월부터 항체치료제와 임상 2상을 시작하면서 판매용 의약품 생산도 본격화한다. 연말께 종료되는 임상 2상 결과가 잘 나오면 정부의 긴급 사용승인을 받아 곧바로 치료제 판매에 나서기 위해서다. 서정진 회장은 “코로나로 돈 벌 생각은 없다”며 “제조 원가를 낮춰 많은 사람이 맞을 수 있도록 할 것” 이라고 했다. 현재의 바이러스 변이 수준이라면 스파이크 단백질 머리 부분인 S1만 공격해도 치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