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수에만 매달리는 방역…언제까지 이렇게 할 건가 [여기는 논설실]

점점 커지는 코로나 방역 피로감
오늘부터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2단계로 격상됐다. 신규 감염자 수가 지난주 계속 300명을 넘나들면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코로나 피로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이루말 할 수 없는 지경이고 일반 시민들도 짜증이 절로 날 정도다. 마스크 안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데다 오늘부터 서울시에서는 연말까지 10명 이상 집회도 금지됐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 횟수도 줄어든다.방역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모르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이 정도면 이제 사람들이 서서히 지쳐 가는 국면에 접어든 것도 같다. 한국인이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가장 많이 느낀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은 코로나에 유독 민감하다. 마스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써왔던 것도 어찌보면 남한테 피해를 주기 싫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가 걸리면 어쩌지?"하는 공포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그런 공포감조차 만성화되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3월부터 시작돼 이제 8개월이 넘게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에 따른 생활 불편이 거의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확진자 수에만 매달리는 방역

정부는 확진자 숫자에 주로 매달리며 이게 많이 늘면 방역단계를 높이고 줄면 낮추고 하는 듯 하지만 이마저도 명확한 원칙이나 일관성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방역을 하고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가 치명적 감염자 발생을 막는다는 것인데 지금의 정부의 방역지침은 오직 확진자 숫자를 줄이려고만 하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만 해도 1단계와 1.5단계 2단계 등으로 나누지만 무슨 거리두기에 소숫점까지 필요한 지도 의문이다. 단계별로 무엇이 금지되는 지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가 아닌 한, 정확히 아는 사람도 적지만 알려고 들려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코로나 공포에 다소 시큰둥 해진 것은 해외에서 들불 번지듯 한 코로나 확산세가 그나마 국내에서는 그리 심하지 않은데다 정부의 방역이 지나치게 정치적 편향성을 띤데 따른 반발감도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개천절 한글날 집회를 앞두고 대통령 총리부터 시작해 그렇게 집회자들에게 엄포를 놓고 버스로 차단벽까지 치더니 민주노총 등 노동계 집회에 대해서는 구두로 '집회 자제'만을 당부하는데 그쳤다. 노동계 집회 당시 확진자 수가 한글날 개천절 짐회 당시보다 훨씬 많았음에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계 집회에는 집단 코로나 백신이라도 작동한다는 것인가.

정부가 코로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부터 적지 않았지만 양쪽 집회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틀린 말은 아는 것 같다. 어쨌든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정부가 확보한 백신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처럼 단순 확진자 숫자만을 갖고, 그것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방역 지침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다.

과학과 사실에 입각한 방역으로 전환해야

코로나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심하게 앓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의 대책은 오직 확진자 숫자를 줄이는 것인 듯하다. 코로나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이른바 무증상 감염자가 매우 많다는 것은 거의 확인된 사실이다.
코로나의 연령별 치사율은 85세 이상에서는 27%로 비교적 높다. 하지만 75~84세는 7.3%, 65~74세는 2.2%로 낮아진다. 55~64세는 0.7%, 45~54세는 0.2%, 35~44세 0.06%, 0~34세 0.01% 다. 55세 미만중 코로나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은 1천명에 한명도 채 안된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는 전 세계 통계이고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연령층에서 전 세계 통계보다 치사율이 낮다.의사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노인 질환'이라는 이야기나 자주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코로나 공포는 매우 과장돼 있다. 언론이 단순 사망자 숫자만으로 보도하고 후유증이 큰 사람만 기사로 싣는 것도 그런 공포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코로나 피로감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대중의 막연한 공포와 '정치 방역'의 필요성에만 기대 지금 같은 주먹구구식 방역정책을 지속할 수는 없다. 아니 지속해서는 안 된다.

과학에 근거한, 합리적 숫자에 바탕을 둔 그런 방역 정책으로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우선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하는 통계부터 바꿔야 한다. 현재는 매일 확지자 숫자만이 언론을 통해 주로 공개된다. 정부는 검사자 숫자도 공개한다고 하지만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는 누적검사자수, 누적검사완료수 등 주로 누적 수치만 나올 뿐, 몇명을 신규로 검사해 확진자가 나온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일일 검사자 수를 알려면 질병관리청 보도 참고 자료를 찾아 <국내 신고 및 검사 현황>에서 <총계>의 어제와 오늘간 변동치를 봐야 한다. 이 표에는 <일일 검사자 수>라는 이름은 없고 그냥 총계로만 되어 있어 내역을 모르는 사람은 봐도 이것이 일일 검사자 수인지 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찾아보기 힘들게 해놨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하루 몇명을 검사해 그중 확진자가 몇명인가 하는 것인 만큼 일일 검사자 수를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1일 확진자 수 증가분과 함께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확진자 중 무증상 감염자는 몇명인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현재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통계는 확진자를 제외하고는 일일 순증 통계보다는 주로 누적 통계만을 발표하고 있어 하루하루 추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게 돼 있다. 이와 함께 확진자와 사망자의 연령별 분포 등도 매일매일 국민들이 알기 쉽게 적극 공개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를 연구하는 해외 논문 등을 보면 한 국가내에서도 지역별 코로나 동향, 국가간, 연령별 코로나 감염, 치료, 사망 동향등을 서로 비교하며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 사례도 종종 인용된다. 이에 반해 정작 국내에서는 지역 통계를 빼면 이런 통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 통계 개편과 함께 환자 치료와 방역을 고령자, 중증 환자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증이 아닌 확진자들은 격리 등 감염 확산 방지에 초점을 맞추면 되고 의료시설은 생명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는 중증 환자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그런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병의원, 의료인력, 장비와 의약품 등도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동원될 수 있고 불필요한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지금처럼 단순 확진자 수를 갖고 전국에서 전 연령대에 거쳐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방역정책은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경제를 비롯,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의료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할 일은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알리고 정말 필요한 곳에 방역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서울시의 코로나 공포 조장

이와 관련해 서울시가 시내 곳곳 대형 전광판에 <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라는 이름으로 내보낸 영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화면은 젊은 여성이 마스크를 끼고 책인가를 읽는 모습과 중환실에서 심폐소생 마스크를 낀 환자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 화면만 보면 마치 마스크를 안 끼면 누구든 중환자실에 실려가 생사의 기로에 처하게될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마스크 착용을 권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사실과 다르게 위험을 과장해 불필요한 코로나 공포를 갖게 만드는, 정말 문제 있는 장면이다. 55세 미만에서는 1천명당 1명도 사망하지 않는 코로나를 마치 죽음의 질병이라도 되는냥 이렇게 광고해도 되나. 아마 구미 선진국에서 이런 식의 공보물이 크게 걸렸다면 아마도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항의와 저항에 부딪혔을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서 "코로나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이런 막연한 공포가 확산된 데는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정확한 팩트와 숫자 통계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말도 안되는 과장 광고로 불필요하게 코로나 공포를 확산시키는 서울시 등 지방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 여당은 코로나 확산이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계산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경제실정도 코로나에 묻을 수 있고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 넣으면 통치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젠가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