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다 있었구나"…30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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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4일 생애 처음 지휘봉 잡는 김선욱30대 젊은 피아니스트들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다음달 음악 인생에서 '최초'란 제목을 걸고 무대를 꾸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32)은 지휘자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1)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데카를 통해 음반을 냈다.
글로벌 레이블 '데카'에서 첫 음반 낸 선우예권
다른 길을 택한 계기는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다. 공연이 취소되자 여유가 생겨서다. 김선욱은 연주에 바빠 미뤄왔던 지휘에 나섰고, 선우예권은 공연장 대신 녹음실에서 어릴 적 쳤던 모차르트를 다시 찾았다.
"떨리고 두렵지만 잘 해내야죠"…지휘석 오르는 김선욱
"어릴 적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어요. 꿈만 꾸던 무대에 서는거죠. 이번 공연에서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죠."김선욱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공연에 나서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다음달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지휘자로서 데뷔 공연을 연다. 공연에선 베토벤의 '에그먼트 서곡'과 '피아노협주곡 2번'과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피아니스트로서 입지를 다져놓은 지 오래다. 그는 2006년 이미 18세 나이로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40년 역사상 가장 어린 우승자였다. 일찌감치 쌓은 명성 덕에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베를린 필하모닉 등 유럽 명문 악단들이 그를 찾았다. 내년에도 베를린 필과 함께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건반만 쳐도 창창한 미래가 보장됐다. 하지만 한 가지 길만 고집하진 않았다. 2010년 돌연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 입학했다. 왕립음악원은 매년 단 두 명만 뽑아 지휘자로 육성해왔다. 그 중 한 명이 김선욱이었다. 3년 동안 콜린 매터스에게 사사했지만 고민이 생겼다. 피아노와 지휘봉 사이에서 갈등한 것이다. 그의 손은 건반으로 향했다.
"지휘를 배우고 나니 오히려 연주 활동과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죠. 피아니스트로서 발굴할 레퍼토리도 많고 내공도 더 쌓아야 해서요.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돼자 미뤄온 숙제(지휘)를 풀러 다시 나섰습니다."그는 당초 지난 4월 영국 본머스 오케스트라 심포니와 함께 데뷔무대를 열려했다. 코로나19로 미뤄진 것이다. 첫 지휘인만큼 레퍼토리도 왕립음악원 면접에서 선보였던 곡들로 채웠다.
건반 대신 지휘봉을 잡는데 낯설진 않았을까. 김선욱은 음악적인 요소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피아노를 오케스트라 선율처럼 치려고 노력해왔어요. 왼손은 반주 오른손은 주선율이란 이분법을 탈피하려했죠. 오케스트라 화성을 이해하는 건 문제가 없었어요."
소통이 난제였다. 머리 속에 있는 음표와 박자를 말로 표현하는 게 고역이었다고 했다. "단원들에게 제 주관을 전달하고 연주로 실현시키는 과정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건반을 칠 때와는 달랐죠. 설레고 떨립니다. 무섭기도 하지만 잘 해내야죠."
새 음반 '모차르트'로 초심 찾기 나선 선우예권
또래 피아니스트인 선우예권도 초심을 찾았다. 지난 24일 발매한 음반 '모차르트'를 통해서다. 생전 처음 스튜디오에서 연주해 녹음한 앨범이다. 지난 24일 서울 압구정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선우예권은 근황부터 말했다. 새 음반을 발매한 이유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계속 취소돼 연습을 두 달간 쉰 적이 있어요. 생기를 잃었죠. 우울하고 외로웠어요. 근데 다시 건반을 치니 살아있음을 느꼈죠. 음악의 힘 덕분에 건반 앞에 섰습니다."2017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3년만에 내는 새 음반이다. 첫 공식 앨범이다. 콩쿠르 우승만 8번. 그동안 콩쿠르 주최측에서 기획해 연주 실황을 녹음한 앨범만 선보였다.
음반은 두 장으로 이뤄졌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11번·13번·16번' 등 대중들에게 친숙한 곡들을 담았다. 두 개의 환상곡과 함께 론도 작품도 실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편곡한 '터키 행진곡'도 보너스 트랙으로 넣었다. 직접 악보에 메모를 적은 론도 악보도 함께 제공한다.
"제가 1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레퍼토리입니다. 첫 스승이었던 세이무어 립킨도 모차르트를 좋아했어요. 번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할 때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 호평받았습니다."
그가 해석한 모차르트는 복잡한 인간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말썽꾸러기 천재가 아니다. "흔히 모차르트를 경쾌한 천재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오페라 아리아나 소품곡들을 듣다보면 눈물이 맺혀요. 인생에 담긴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가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다양한 매력을 모습을 음반에서 발매할 수 있을거에요."
음반을 내려 가진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선망하는 예술가다보니 단편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했습니다. 완벽주의자인 모차르트가 들으면 혼낼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보라고 CD를 건낼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머리 속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선율이 들어있는 지를."음반 발매에 맞춰 오는 30일 광주를 시작으로 대전 부산 대구 서울 제주 울산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독주회를 연다. 앨범에 수록된 소나타 8·10·11·13·16번과 아다지오, 론도, 판타지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