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누군가의 아들 아닌 지플랫…최환희가 디자인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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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플랫(최환희) 인터뷰보자마자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톱 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주 TV에 얼굴을 비추었던 어린 꼬마는 어엿하게 성장해 가수가 되어 있었다.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유독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드는 음악과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대해 말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 머릿속에 남은 건 누군가의 아들이 아닌, 가수 지플랫(Z flat)이었다.
20일 데뷔 싱글 '디자이너' 발표
"연예인 아들 아닌 아티스트로 새 출발"
"음악한 지 2년" 고교 시절부터 꿈 키워
"내고 싶은 곡 많아, 재밌게 음악 하는 게 목표"
"많은 분들이 저를 '故 최진실 아들' 최환희로 기억하고 계셔서 그 이미지로만 바라볼까 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갓 데뷔를 했으니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음악적인 색깔을 보여드리면서 연예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동시에 아티스트적인 이미지를 더 진하게 굳혀가는 게 제 숙제라고 생각해요. 제 음악성을 보여줄 자신이 있어요.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열심히 음악 하면서 왜 이렇게 자신이 있었는지를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요."지플랫은 지난 20일 데뷔 싱글 '디자이너(Designer)'를 발표하고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지플랫이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정작 그를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을 테다. 지플랫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그를 단번에 '故 최진실 아들' 최환희로 기억해 낸다. 그러나 지플랫은 이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하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음악으로 최환희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나 지플랫 자체를 각인시키겠다는 그의 각오는 단단했다.
◆ 최환희의 인생 챕터 2, 지플랫
지플랫은 음악 코드에서 착안한 활동명이다. 음악 코드는 A부터 G까지 있을 뿐, Z플랫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세상에 없는 음악을 하겠다는 뜻을 이름에 담았다. 최환희가 아티스트로서 디자인하는 또 하나의 '나'이기도 하다. 지플랫은 "기존에 있던 최환희의 이미지를 지우고 새롭게 아티스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예명을 쓰기로 했다. 이제는 최환희보다는 지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데뷔 싱글 '디자이너'는 경쾌한 신스와 플럭 소리가 중독적인 후렴구와 만나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곡이다. 지플랫은 여성 보컬 혼담과 호흡을 맞춰 서로를 포함해 더 넓게는 이 세상을 디자인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지플랫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하며 프로듀싱 실력을 뽐냈다. 지플랫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밝고 경쾌한 사운드의 곡이다. 듣고 난 후 한 번쯤은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노래"라고 설명하며 "새 출발을 하는 내 상황과도 잘 맞는 노래인 것 같다"고 했다.이제 데뷔인데 새 출발이라니, 무슨 뜻일까. 최환희는 "음악을 꾸준히 해 온 내 입장에서는 새 출발이 아닌 시작일 수 있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연예인의 아들로 TV에 나오던 애가 독립된 아티스트로 데뷔한다고 하니 놀라고 새롭기도 하실 거다"고 말했다. 이어 "나 또한 이제 막 스무 살이 됐으니 인생의 첫 번째 챕터를 끝내고 두 번째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기존에 있던 '연예인 아들' 최환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아티스트로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다"고 부연했다.
지플랫의 음악은 힙합을 베이스로 한다. 데뷔곡 '디자이너'에서도 지플랫은 중저음의 개성 있는 톤으로 깔끔하고 힘 있는 래핑을 선보인다. 특히 목소리와 상반된 경쾌한 무드가 인상적인데, 사실 지플랫이 작업해온 음악들은 이와는 다른 새벽의 감성을 닮은 곡들이라고 한다. 당초 '디자이너'도 잔잔한 느낌으로 만들어진 곡이었으나 데뷔를 앞두고 밝게 편곡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이전에 만들었던 곡들을 들어 보니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에 묵직한 느낌의 랩이 더해진, 감성적인 알앤비 힙합 장르였다. 대부분의 곡에 피아노 사운드가 가미돼 있는데, 낮고 차분한 지플랫의 목소리와 참 편안하게 조화를 이룬다.피아노는 지플랫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다. 그는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쳤다. 처음에는 남들이랑 똑같이 바이엘, 하농 등을 쳤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친구랑 게임을 하던 중 배경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걸 피아노로 따라 치게 됐다. 클래식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게 정석이라면 난 그냥 치고 싶은 걸 쳤다. 그렇게 하니 피아노 치는 게 재밌어져서 꾸준히 했다"면서 "치고 싶은 게 생기면 치고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워낙 즐겁게 쳐서 피아노 소리가 내겐 제일 친숙하고 쉽게 들리고 또 다루기도 좋다. 정이 가는 악기다. 감정선을 내기도 엄청 좋은 것 같다.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제각각 다 실리는 게 좋다"며 웃었다.
'디자이너' 편곡에서 가장 신경 쓴 것 역시 피아노였다고. 지플랫은 "원곡에 있는 피아노 사운드를 엄청 좋아했다. 그걸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특유의 신나는 분위기까지는 올리기가 쉽지 않더라. 그래서 결국 피아노를 버리고 신시사이저로 바꿨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혼담 누나 파트에서 피아노가 들어간다. 원곡에서 진짜 좋아하는 파트라서 제일 신경을 많이 썼다.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 아련함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 제주도 기숙사에도 꺼지지 않은 음악 열정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 지플랫은 배우로 연예계에 진출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랩을 하며 나타난 그의 모습은 다소 생소하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한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연예계 활동 계획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음악과 연이 닿아 가수로 데뷔까지 하게 된 걸까. 너무 순수하고 맑은 답변이 돌아와 서로 한바탕 웃었다."작년에 거짓말 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웃음) 그땐 연막이었어요. 사실 그 때도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작업물이 없었어요. 음악을 한다고 말만 하고 다니는 애처럼 보일까 봐 제 실력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아요."
지플랫이 음악을 한 시간은 2년 정도다. 뚜렷한 성과를 내기에는 상당히 짧은 시간이지만 지플랫은 꾸준히 실력을 쌓으며 프로듀싱까지 하는 기특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가수의 꿈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 힙합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친구의 권유로 축제 무대에 오르면서였다. 힙합을 좋아하던 지플랫에게 그날의 기억은 곧 '꿈'이 됐다. 지플랫은 "관객들이랑 떼창하며 뛰어노는 것도 재밌고, 내가 부르는 구절을 관객들이 다 떼창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이게 대단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 내가 만든 노래를 사람들이 따라 부르면 더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그런 매력에 빠져서 음악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제주국제학교에 다녔던 그는 기숙사에서 조금씩 꿈을 키워나갔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에 매진할 때 지플랫은 모은 용돈으로 마이크, 부속품, 녹음 및 작곡 프로그램, 오디오 등 저렴한 장비를 찾아다녔다. "싸고 또 싼 걸로 골라 샀다"고 말한 그는 "처음엔 스피커가 없어서 노트북 스피커로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룸메이트가 음악 하는 걸 이해해줬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친구들한테 나중에 음악으로 성공해 갚겠다 했다"고 덧붙였다.
어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음악을 하던 지플랫에게 현재 소속사인 로스차일드(ROSCHILD)의 대표 로빈은 더없이 좋은 인연이 됐다. "혼자 음악을 하면서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지인을 통해 대표님과의 자리가 마련됐다. 대표님에게는 생판 모르는 학생이 와서 자기 노래를 들어달라고 하는 자리였다. 작업실에서 내 노래들을 들려드렸는데 마음에 들었던 게 몇 개 있었던 것 같더라. 그 뒤로 꾸준히 음악적 교류를 했다"고 지플랫은 밝혔다.
로빈은 YG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이자 악동뮤지션 '200%', 워너원 '약속해요', 슈퍼주니어 'GAME' 등을 작곡, 편곡한 유명 프로듀서다. 그가 설립한 소속사 로스차일드의 첫 아티스트가 바로 지플랫이다. 제주도의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고등학생 지플랫은 로빈에게 메일로 작업물을 보내고 피드백 받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대표님이 숙제처럼 '이런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작업해 메일로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 그 관계를 이어갔다. 방학 때 서울을 오면 작업실에 가서 대표님이 작업하는 걸 직접 보면서 배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 시기와 회사 설립 시기가 맞물리면서 지플랫은 대학교가 아닌, 로빈의 품으로 향했다.
◆ "재밌게 음악 하는 게 목표"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지플랫이었다. 분명한 건 다음 스텝이 기대되는 아티스트였다는 것. 지플랫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데뷔를 하고, 회사가 생기고, 노래를 발매하는 레벨까지 온 게 신기하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분들의 도움에 감사하다"면서 "솔직히 '디자이너'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강 병기는 아니다"고 말해 향후 온전한 자신의 색깔로 구현해낼 곡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그러면서 "'디자이너' 전후로 만든 노래들이 많다. 지금 그걸 다 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면서 "일단 그 곡들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을 받으면 바로 낼 생각이다. 아마 자주 신곡을 낼 것 같다. 세상에 나와 빛을 봐야 할 노래들이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목표에 대해서는 "음원차트 차트인만 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랑 많이 작업해보고 싶고, 같이 무대 위에서 놀면서 공연도 해보고 싶다. 재밌게 음악 하면서 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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