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급여 금지’ 삭제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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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해 불식한다며 설명자료 내놨지만…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 경영계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오해를 해소한다며 지난 9일 ‘팩트체크’ 자료를 내놓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바로 다음 날인 10일 반박 자료를 내놨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덧붙였다. ▲해고자인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사업장 점거 쟁의행위 일부 제한 등을 문제 삼았다.
노동계도 경영계도 수긍 안 된다는 입장
전문가 의견 토대로 정부 개정안 놓고 팩트체크
그중 전임자 급여 금지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정부 설명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전임자 급여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라는 게 ILO 입장인데, 한국은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정부가 주도해 정한다고 지적한다. 전임자 문제는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빠지라는 얘기다.정부안인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 삭제’를 놓고 경영계도 반대 입장이다. 복수노조 도입 과정에서 과도한 노조 전임자 수를 놓고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10여 년간 큰 진통을 겪었던 점을 언급하며, 지금은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더욱 엄격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노조법이 개정돼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이 삭제되더라도 여전히 타임오프제가 적용되는 만큼 전임자 급여는 금지된다고 설명하지만, 경영계는 사실상 근로시간면제제도가 허물어지게 됐다고 설명한다.
현행법은 노조 전임자 급여는 금지하되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 노조 활동을 예외적으로 유급으로 처리하는 구조다. 근로시간 면제를 받는 노조 활동은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 처리 등으로 법에 정해져 있다. 집회 참석, 연대 파업, 정치 활동 등에 대해서는 타임오프가 적용되지 않도록 법이 제한하고 있다.
◆개정법 해석상 타임오프와 별도로 전임자를 둘 여지도
개정법에 따르면 법 해석상 근로시간 면제자 이외에 노조 전임자를 둘 수도 있다는 게 황용연 경총 노사협력본부장의 설명이다. ‘전임자’ 관련 규정이 아예 삭제되고 ‘근로시간 면제자’ 규정만 남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면제자의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 규정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얘기다.법 조문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노조 전임자 급여를 다시 이슈화하는 건 오히려 노사 간 갈등만 부추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교수는 지난 23일 한국경제신문이 개최한 긴급 노동법 좌담회에 참석해 “전임자 급여 관련 ILO 권고는 한국 노동계의 민원 사항”이라며 “(정부 개정안은) 노사관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2010년 이후 타임오프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헌법재판소도 합헌으로 판정했다”라며 “전임자 급여 규정을 다시 흔들면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늘려 달라는 노조 요구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정부안에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은 무효로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사용자가 이를 호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의뢰한 연구보고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관련 국제비교 및 시사점》에서다.타임오프제 도입 이전으로 노조 전임자 수를 되돌리려는 대기업 노조의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7월 타임오프제가 도입된 후 전임자는 크게 줄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0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전임자 수는 12.8명에서 7.4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현대차는 233명에서 18명으로, 철도본부는 64명에서 17명으로 전임자 수가 각각 줄었다고 한다. 앞으로 노조 전임자 관련 분쟁이 어느 정도로 늘어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숫자다.
◆대기업 중심으로 노조 전임자 관련 갈등 증폭 우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오히려 노동권 보장을 저해한다며 ‘노동개악 저지 투쟁’에 나선다는 게 양 노총 입장이다. 노동계를 달래자면 국회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을 수정할 가능성도 높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대로 개정되더라도 기업 현장에서 전임자 관련 노사 갈등이 많이 늘어날 걸로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회 심의과정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최종석 전문위원/좋은일터연구소장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