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 점주님, 통닭도 배달하시죠"…PEF '숍인숍 제안'에 위기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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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 전성시대 (3)·끝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들이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 항로’를 수정해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종의 경영 컨설팅이다. 일반적인 컨설턴트는 기업을 위해서 일하지만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PEF는 다르다. 투자한 회사의 가치가 빨리 올라가야 주주인 PEF도 이익을 볼 수 있다. PEF가 ‘기업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영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경영 컨설턴트가 된 PEF
모건스탠리PE가 투자한 놀부
매장을 '공유주방'처럼 운영
대경오앤티도 PEF에 인수된 후
신재생 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
기업이 PEF 투자 유치하면서
"성장전략 제안하라" 요구하기도
보쌈 매장을 ‘공유주방’으로
보쌈과 부대찌개 등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업체 ‘놀부’는 2년 전부터 최대주주인 미국계 PEF 모건스탠리프라이빗에쿼티(PE)의 제안으로 통닭과 탕수육 등을 숍인숍 형태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PE에 놀부는 그간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2011년 인수 당시의 기대와 달리 요식업계 경쟁 심화 등으로 실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2018년 모건스탠리PE가 새 대표로 발령한 안세진 대표는 놀부의 업태 자체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매장에 오는 손님만 응대하지 말고 배달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보쌈과 부대찌개도 배달이 되지만 수요가 한정적이었다. 점주들이 떡볶이 돈가스 통닭 등 10가지 중에 원하는 브랜드를 골라서 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놀부주방’시스템을 도입했다. 본사와 가맹점 사이 갈등의 진원지였던 광고 분담금 제도는 아예 없앴다. 배달 브랜드를 추가하는 비용은 브랜드당 월 15만원으로 고정했다.점주들은 추가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매출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말 기준 516개 점포 중 294곳(57%)이 놀부주방을 도입해 2~3개 배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보쌈과 부대찌개 매장이 ‘공유주방’으로 바뀐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 놀부 점주들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평균 약 30% 늘었다. 김영한 놀부 반포점 점주는 “홀에 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매출의 80%는 배달에서 나온다”며 “김치피자탕수육 등 특색 있는 음식 주문이 많다”고 말했다.
바이오디젤로 신성장 동력 장착
기름을 정제하던 회사가 PEF의 투자를 받은 뒤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도 있다. 부산 기업인 대경오앤티는 동물성 유지를 가공해서 라드(돼지기름) 등을 생산하는 회사다. 도축장에서 버려지는 지방과 부산물을 수거해 사료·공업용 기름을 제조하는 게 주업이었다. 업계 1위 점유율로 실적은 안정적이었지만 추가 성장 동력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국내 토종 PEF인 스틱인베스트먼트는 2017년 이 회사를 사들여 바이오디젤 생산업체로 성격을 바꿨다. 전상엽 스틱인베스트먼트 상무는 “가정과 식당에서 버려지는 폐유를 수거해 정제해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미래유지 등 관련 업체 10여 곳을 추가로 매입해 기반을 다졌다.
예상은 적중했다.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한 대경오앤티에는 국내외 업체에서 원료 공급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바이오디젤 사용이 의무화되고 있어서다. 정부는 자동차 등 연료에 포함되는 바이오디젤 의무 비율을 현재 3.5% 수준에서 2030년에는 5.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경오앤티는 2017년 매출 2300억원, 영업이익 64억원에서 올해는 매출 3000억원, 영업이익 15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먼저 성장전략 묻기도
다양한 업종에서 ‘돈 되는’ 아이디어를 찾는 데 특화된 PEF의 역량이 부각되면서 기업들이 먼저 PEF에 성장 전략을 묻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주요 계열사 등에 지분 투자를 받을 때 PEF에 반드시 ‘어떻게 이 회사의 가치를 높일지’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LG그룹은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 이슈를 피하기 위해 LG CNS 지분 35%를 매각하면서 맥쿼리PE와 KKR 등에 가격 외에 성장계획을 함께 적어내도록 요청했다. 한 PEF 대표는 “앞으로 ‘같은 배’를 타야 하는 2대 주주를 받아들이는 만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기업 안에서는 보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PEF가 발견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은/김채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