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죽은 사람 이름 법에 붙이는 거 그만하면 안되나요?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사진=연합뉴스
'공무원 구하라법 본회의 통과'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및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해당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개정안은 순직한 공무원에 대해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유족은 퇴직유족·재해유족급여 전부 혹은 일부를 못 받도록 제한하는 내용입니다.지난해 11월 연예인 구하라 씨가 스스로 삶을 등진 뒤 20년 전 가출한 모친이 구 씨 재산을 상속받은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후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국회에서는 민법 개정이 추진됐는데요. 이때 개정안에 이름이 붙은 '구하라법'을 공무원연금법 및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에도 가져다 쓴 겁니다.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이지만,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개인의 이름을 정치권이 지나치게 이용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야 국회가 '뒷북'으로 나선다는 비판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유가족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친권을 가진 부모가 사망한 뒤 가정법원의 심사를 통해 미성년 자녀의 친권자를 결정하도록 한 민법 개정안을 '최진실법'으로, 구타와 가혹행위 같은 인권 침해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스포츠 지도자의 인적 사항과 비위 사실을 공표하는 내용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최숙현법'으로 부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안이라도 논의 과정에서 개인사가 부각되면 차분한 토론과 검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민식이법'이 대표적입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사망한 고(故) 김민식 군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추진됐습니다.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 횡단보도 신호기 설치, 불법주차 금지 의무화 등을 포함한 도로교통법과 스쿨존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이 민식이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리됐는데요.

이 가운데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징역까지 선고하고, 상해를 입히면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는데요. 당시에도 과실만큼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고, 운전자가 제한속도를 지켜도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등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김 군을 애도하는 여론에 휩쓸려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민식이법이 통과된 뒤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자기 아이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빠진 부모의 발언을 통해 여론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에 쏠리면서 국회에서는 해당 법안의 허점과 부작용 등은 고려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이를 가결했다"며 "해당 법안은 입법권 남용과 여론몰이가 불러온 엉터리 법안"이라고 했습니다. 이 청원은 3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일명 구하라법인 민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습니다. 20대 국회 당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구하라 씨 사건처럼 국민들이 공분하는 사건도 있고 또 그런 것을 보완할 제도적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민법은) 기본법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분한다고 서둘러서 할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구 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접어두고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