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해 표기' 확산 걸림돌 사라졌다

'일본해' 명칭 주장 근거 없어져
디지털 시대, 동해 표기 전략 필요

이태호 < 외교부 2차관 >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동해 표기 이야기다. 얼마 전 개최된 제2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국제사회는 일본해를 단독 표기하고 있는 S-23(해양과 바다의 경계)이라는 낡은 틀을 벗어나 차세대 전자해도인 S-130을 신(新)표준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S-23이 더 이상 표준으로 활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명칭이라는 주장의 주요 근거가 사라지면서 동해 표기 확산의 큰 걸림돌이 제거됐다. 이는 우리 외교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구글 지도, 오픈 스트리트 맵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대기술 혁신의 흐름 속에서 앞으로 동해 표기 확산 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동해 표기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일정한 성과를 거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절에 꽤 널리 사용돼버린 바다 명칭을 수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우리나라가 1992년 개최된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 제6차 회의에서 최초로 동해 표기 문제를 제기한 이후, 우리 정부와 민간은 힘을 합쳐 꾸준히 동해 표기 확산 노력을 펼쳐왔다. 그 결과 내셔널지오그래픽, 랜드맥널리, 더타임즈 등 세계 주요 지도 제작사 및 출판사에서 동해를 병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BBC, CNN, 르몽드,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도 동해 명칭을 병기하는 추세다. 우리로서는 동해가 맞는 명칭이지만, 한·일 양국 간 명칭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동해를 병기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유엔지명전문가그룹(UNGEGN), 국제수로기구(IHO) 사무국 등 바다의 명칭과 관련된 권위 있는 주요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다수 진출하고 있다. 1953년 S-23 제3판 발간 당시 국제사회 논의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앞으로 신표준으로 자리 잡을 S-130.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표준이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새로운 표기 환경 속에서 우리 정부는 우리의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표준인 S-130의 개발 과정에 적극 참여해 동해 표기 확산을 위한 노력을 배가해나갈 것이다.

우리 정부는 디지털화 흐름에 발맞춰 온라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해 재외공관 및 관계기관과 동해 표기 상황을 상시 공유하고, 디지털 공공외교 사업과도 연계해나가는 등 디지털 영역에서의 동해 표기 확산 노력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정부와 함께 동해 표기 확산을 위해 노력한 민간단체를 비롯해 국민의 지속적인 성원이 더욱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