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능력주의는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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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불평등의 정도가 같은 두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나라는 귀족주의 사회로, 소득과 재산은 어떤 집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한 나라는 능력주의 사회다. 재산과 소득은 각자가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은 결과물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날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은 둘 중 어떤 사회를 선택하고 싶은가. 부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귀족제 사회가, 가난하다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싶다.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420쪽│1만8000원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귀족제에서 부자는 자신의 특권이 행운임을 인식하고, 빈자는 자신의 불행이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라 불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삶이 고달프긴 해도 운이 문제지, 자괴감에 빠지진 않는다. 반대로 능력주의 사회의 부자는 성공을 행운이 아니라 성취로 여긴다. 빈자는 부족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저주하면서 깊은 좌절에 빠진다. 당신은 어느 사회에 태어나고 싶은가. 어느 나라가 더 정의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쓴 《공정하다는 착각》은 충격적인 화두를 던지며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다. 샌델은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돼 있다”고 지적한다.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선 시간이 갈수록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고,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 여기서 뒤처진 사람들에겐 유독 가혹하고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샌델은 ‘하면 된다’는 공통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는 능력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만 합격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불확실한 선별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 정도로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조한다. “삶의 어떤 영역은 운수가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겸손한 마인드로 연대해야 한다”고.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