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사 옮기고 골프장 짓고…지자체들, 쌈짓돈마냥 추경예산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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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추경 뒤에 숨은 지자체 '방만재정'지방자치단체들이 추가경정예산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행태는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차례 추경이 이뤄진 올해는 관리 부실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늘어난 예산을 당장 급하지 않은 각종 건축·개발사업에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자체 재정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비슷한 사례가 끊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해 추경으로 예산 70兆 증가
코로나 관련없는 사업 수두룩
늘어난 예산 '연말 몰아쓰기'
불필요한 건축·개발 잇따라
코로나19 앞세워 일단 증액부터
3일 재정성과연구원이 지난달까지 전국 지자체들이 공시한 예산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추경으로 약 70조원의 예산이 늘어났다. 당초 예산 345조원의 약 20%에 달하는 규모다. 코로나19 충격을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일부 지자체들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등 불요·불급한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예산을 쓰지 않으면 담당 부서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데다 국가보조금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경남 진주시는 최근 2차 추경예산 편성 때 부시장 관사와 집기 매입비용 4억5000만원을 포함했다. 현재 관사인 아파트가 1990년에 준공돼 노후화했다는 이유지만 코로나19와는 상관이 없는 사업이다. 전남 무안군은 네 번째 추경으로 남악신도시 파크골프장 조성비 17억원을 증액하기도 했다.
정부의 ‘묻지마식’ 국고보조금 증액이 지자체 사업예산 확대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지난달 경기 시흥시는 1397억원 증액한 3차 추경예산에 해양생태과학관 조성비 61억원과 해양레저관광거점 조성 예산 20억원을 편성했다. 시의원들이 갑작스러운 증액을 따지자 시흥시 관계자는 “늘어난 국비에 맞춰서 (매칭) 예산을 세워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6월 추경에 길고양이 중성화사업비를 늘린 서울 영등포구 역시 매칭 예산 사업이란 점을 이유로 들었다.국고보조금 등을 추경 편성 없이 일단 사용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인 간주처리가 예산 불일치의 원인이기도 하다. 서울시 각 부서와 산하기관의 간주처리 요청은 작년 188건에서 올해 250건으로 껑충 뛰었다. 공시된 예산과 집행 중인 예산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서울시는 네 차례의 추경에 간주처리 내역을 반영하며 공시된 예산과 실제 예산을 일치시켜 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자체 예산과 결산은 각 지방의회가 검토하고 승인한다”며 “각 지자체가 여러 번의 추경으로 최종 예산안을 공시하지 못했을 때는 결산서에 최종 예산액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빚에 편승한 지자체 추경 확대
지자체 사업의 주요 자금원인 국고보조금 일부는 빚으로 충당된다. 무턱대고 재정을 확대하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강인재 재정성과연구원장은 “코로나19 위기를 구실로 각종 사업을 벌이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사후 운영관리비도 같이 늘어난다”며 “매년 복지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정이 한계에 부딪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따라서 지자체 재정 감시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예산공시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외부 전문가가 감사로 참여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정부의 세입·세출 통제는 지자체가 어느 항목에 돈을 썼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지만 회계감사는 돈을 써서 토지를 매입했을 경우 그 땅의 가치가 얼마인지도 따져보기 때문이다. 가령 수년 전 토지보상비 논란을 빚은 천안시의 780억원짜리 ‘맨땅 야구장’과 같은 사업도 이런 식으로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감사원이 지자체 감사를 하지만 고발 사건 등이 불거지지 않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창원시는 2009년 이후 11년 만인 올해 정기감사를 받았을 정도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외부인이 재정회계를 들여다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자체들이 쉽게 예산 낭비를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감사 실효성을 더 높이기 위해선 공영 감사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이현일/김진성/김종우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