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인 줄 알고 만원씩 냈는데…" 적십자회비 지로에 분통

사진=연합뉴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송모씨(35)는 최근 우편함에 꽂혀 있는 적십자회비 지로 통지서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해까지 가스비 등 공과금처럼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인 줄 알고 꼬박꼬박 1만원씩 계좌이체를 해 회비를 납부했던 자신의 모습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적십자회비 납입은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뒤늦게 알았다"며 "수년간 사기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의 지로 모금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적십자사는 매년 12월 만 25세 이상 75세 이하 세대주에 지로 통지서를 보낸다.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는 데다 지로 통지서의 양식이 공과금 고지서와 비슷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의 일종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의견이 많다.지로 모금 방식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올해 지로 통지서를 제작하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데에 들어간 비용만은 37억원에 달한다. 모금기간 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납부를 독촉하는 통지서를 추가로 보내 불쾌감을 느낀다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최근 몇 년 새 끊이지 않는 비리로 적십자사가 시민들로부터 신임 자체를 잃어 모금 활동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적십자사에서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성비위와 공금횡령, 금품수수 등 191건의 비위 행위가 발생했다. 적십자사는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들이 헌혈한 혈액을 제약사에 원가 이하의 헐값에 판매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적십자사가 행정안전부에 시민들의 주소 등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인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8조는 적십자사는 회비모금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국가와 지자체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개인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도가 많이 높아진 상황을 고려해 보건복지부에 해당 법령 개정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적십자사는 2023년까지 지로 모금 방식을 폐지하고 모바일 전자 고지 등 다양한 모금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모금 방식이 변하면 정부의 재정지원도 늘어야 한다고 단서 조항을 달았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적십자 재정지원 비율은 예산의 4% 수준밖에 안 된다"며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