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분석] 바이오젠, 우울증 치료제 후보물질 3조4000억 원 ‘빅딜’

미국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이 우울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31억2500만 달러(약 3조4000억 원)에 사들였다. 성공적 개발을 통해 만성적 항우울제 사용을 막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젠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세이지 테라퓨틱스와 주요 우울증(MDD ; major depressive disorder) 및 산후우울증(PPD)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는 ‘주라놀론’과 본태성 떨림을 수반하는 신경운동장애 치료제 후보물질 ‘SAGE-324’에 대한 개발 제휴 및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이번 계약을 통해 바이오젠은 세이지에 선급금으로 8억7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지분투자를 실시키로 했다. 또 단계별 성과 기술료(마일스톤)로 최대 16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 양사는 주라놀론과 SAGE-324 개발 비용을 균등하게 나누는 데 동의했다. 상용화로 인한 이익과 손실 역시 균등하게 나눌 방침이다. 내달 계약을 확정할 예정이다.

주라놀론은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 조절제다. GABA는 뇌 및 중추신경계(CNS)의 주요 억제 신호 경로로 중추신경계 기능 조절에 관여한다. 이는 항우울제에 있어 새로운 접근법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준 항우울제들은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2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라놀론은 2주 이내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세이지는 작년 12월 주요 우울증 대상 주라놀론의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지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6개월 추적관찰 결과에서 고무적인 데이터가 나왔고, 산후우울증 임상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임상 구조(프로토콜)을 수정해 3상을 진행 중이다. 내년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신약 후보물질인 SAGE-324도 GABA 조절제다. 본태성 떨림에 대한 임상 2a상 단계고, 데이터는 내년에 도출될 예정이다.

미셸 부나토스 바이오젠 대표는 “MDD는 미국에서만 약 1700만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질환으로, 여러 신경질환에서 동반된다”며 “현재 우울증에 대한 엄청난 미충족 수요가 있으며, 우리는 주라놀론이 우울증 치료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항우울제의 만성적 사용에 대한 오명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MDD 시장, 2025년 6조4000억 원 전망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내용, 사고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유전 및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호르몬 이상 등의 생화학적 요인으로 발병한다.

우울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식욕이나 수면에 문제가 있으며,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인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심한 경우에는 환각이나 자살 사고 등이 일어난다.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 전기자극 치료 등의 치료법이 있다.뇌의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라는 신호전달 부위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뇌의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우울증과 관련된 물질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dopamine) 등이다.

‘행복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기분과 식욕, 수면, 성욕 등을 담당하고 학습 등 일부 사회적 행동에도 관여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교감신경 자극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와 같은 기분장애의 원인으로 알려진다. 도파민은 활성이 감소되면 무기력, 의욕 저하, 활력 감소 등의 우울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항우울제는 이들 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해 우울 증상을 개선한다.

MDD 치료제 시장은 우울증에 대한 인식 증가, 우울증 검사의 증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의 증가 등으로 성장이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우울증 치료제 시장이 2015년 31억5700만 달러(약 3조5000억 원)에서 2025년 57억8800만 달러(6조4000억 원) 성장을 예상했다. 세계 주요 7개국(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일본) 기준이다.

한국에서도 우울증 환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58만8155명이었던 국내 우울증 환자는 작년 9월 기준 68만2631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의 장기화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블루’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올 3월 조사 대상의 9.7%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답했으나 5월에는 10.1%, 9월에는 13.8% 등 그 비율이 높아졌다.

클리노믹스·와이브레인 등 우울증 도전

다행히 우울증은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질환이다. 상담과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관해 환자의 비율이 70% 수준에 이른다. 증상이 좋아져도 6개월 정도는 약물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다만 약물 치료가 필요한 MDD 환자의 30% 정도는 기존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을 겪고 있다. 새로운 기전의 항우울제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얀센의 항우울제 스프라바토의 신약허가를 승인했다. 성인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에 대해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 투여를 허가했다. 스프라바토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최초의 치료제이자, 우울증 분야에서 프로작 이후 30여년 만에 등장한 신약이다. 주 성분인 에스케타민은 뇌에서 글루탐산 수용체의 활동을 조절하고 시냅스 연결을 회복시켜 우울 증상을 개선한다. 빠르면 투여 후 24시간 이내에 반응을 보인다.

스프라바토는 약 8년 간 2가지 이상의 항우울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28건의 연구와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만큼 우울증 신약의 개발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고려대 의대 신경정신과의 한창수 교수는 “우울증 등 신경계 질환은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신약개발에 많은 난관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접근을 통해 우울증에 도전하고 있다. 와이브레인은 지난달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우울증 치료 전자약에 대한 국내 시판허가를 신청했다. 이번 신청은 올 9월 완료한 재택 기반 우울증 단독 치료 적응증에 대한 임상 3상 결과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임상 3상은 MDD를 진단받은 경증 및 중등증 환자 6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와이브레인의 전자약 플랫폼에 탑재된 경두개직류전기자극법(tDCS) 모듈을 단독으로 사용했다. 6주 간 매일 30분씩 사용한 환자 대부분의 우울증상이 개선됐으며, 50% 이상의 환자는 정상 범주로 회복했다.

뉴로소나는 저강도 집속초음파(LIFU)를 활용한 우울증 치료를 시도 중이다. 탐색임상에서 우울증 환자에서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뇌 부위(왼쪽 배측면 전전두엽 피질)를 LIFU로 자극했다. 자극 전과 자극 직후, 자극 후 2주 뒤의 시점에서 우울증 증상을 측정했다. 실제 자극을 제공한 우울증 환자군과 가짜 자극을 제공한 환자군을 비교한 결과, 자극군의 우울 증상이 의미있는 차이로 개선됐다는 중간 결과를 도출한 상태다.

클리노믹스는 혈액을 기반으로 우울증과 자살 위험도를 예측하는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관련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 발굴을 마쳤다. 내년에 자살률이 높은 한국인과 리투아니아인 390명을 대상으로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