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산후조리원' 최수민 "아들 차태현, 첫 연기에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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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산후조리원' 안희남 역 배우 최수민
50년 경력 베테랑 성우
첫 연기 도전, 1인2목소리 '시선집중'
50년만에 첫 연기 도전이었지만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다. tvN '산후조리원'은 산모들이 아이를 낳고 2주 동안 지내는 산후조리원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으며 공감대를 자아냈다. 출산의 고통 뿐 아니라 아이를 낳은 직후 벌어지는 심리적인 갈등과 혼란을 때론 유쾌하게, 때론 사극, 액션, 학원물 등 다른 장르를 빌려 표현했다. 안희남은 아기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간호사로 인자한 미소와 아기 목소리를 동시에 오가며 시선을 사로잡았던 캐릭터였다. 50년 동안 성우로 활동하며 '영심이'의 영심이,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를 비롯해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아즈라엘을 비롯해 6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했던 베테랑 성우 최수민은 첫 연기도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안희남의 모습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직접 마주한 최수민은 아들 배우 차태현과 같은 보조개가 들어가는 선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늦깍이 탤런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수민은 "처음엔 두려웠고, 걱정도 많았는데, 이제 기회가 된다면 연기를 더 해보고 싶다"는 열의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특히 '산후조리원'에 대해선 "끝나는 게 시원하지 않고 섭섭하기만 하다"며 "꿈에서 깨어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았다"고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수민은 1969년 TBC 11기 공채 성우로 방송을 시작했다. 올해로 50년차 성우다. 김영옥과 나문희, 한석규 등 성우 출신 배우들은 여럿이지만 최수민은 성우 외길을 걸어왔다. 둘째 아들 차태현이 연기자로 사랑받고, 첫째 아들도 영화 제작사 대표로 일하면서 여러번 연기 제안을 받았지만 "난 못한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본을 외우는 것부터 제가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성우는 대본을 보는데, 탤런트는 완벽하게 외워야 하잖아요. 성우의 습관이 있어서 대사를 외워가며 캐릭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았죠. 성우협회를 통해 '산후조리원' 오디션 공지가 왔을 때에도 '아 그런가보다'하고 넘긴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때엔 아이의 목소리로, 엄마들과 대화할 땐 능숙한 간호사인 안희남은 처음 '산후조리원'을 보는 사람에겐 "더빙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자유자재로 목소리가 변하는 캐릭터다보니 제작진은 처음부터 성우를 섭외하려 협회를 통해 문의를 했던 것.
하지만 운명처럼 '산후조리원' 제작진에게 개인적으로 다시 연락을 받았고, "만나만 보자"면서 했던 약속이 출연까지 이어지게 됐다. "일단 '감독님, 작가님 만나서 커피만 마셔보라'는 말에 '알겠다'고 답은 했지만 어안이 벙벙했어요. (차)태현이에게 연락을 했더니 '해야지. 좋은 기회니 일단 얘기만 나눠보라'고 하더라고요. 가서도 똑같이 말했어요. '저 못해요. 대사 못 외워요'라고요. 그런데 앞에 대본을 읽어만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대본이 '엄마찾아 삼만리'라 슬픈 내용이었어요.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니 감독님, 작가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전 원래 그러거든요. 슬프면 슬프게, 재밌으면 재밌게."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아왔지만 최수민의 고민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문득 '왜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랫동안 목소리 연기를 하며 감정을 표현해왔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동선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1인2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카메라 앞에서 외운 대사를 내뱉는 게 더 어려웠다"며 "큰일났다 싶었다"고 첫 촬영을 돌아봤다. "남편이 연극영화과 출신이에요. 제가 연기하는 걸 보더니 본인도 '큰일났다' 싶었나봐요.(웃음) '리얼하게 해. 꾸미지 말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잖아. 그대로 해'라고 말하더라고요. 촬영하는 내내 남편이 매니저처럼 같이 다녔어요. 제가 요즘 충남 당진에 살고 있는데, 세트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려요. 그때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준비를 했죠."
아들들도 적극적으로 최수민의 도전을 도왔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최수민에게 "해보라"고 용기를 복돋아줬던 차태현은 '산후조리원' 마지막회에 자신의 대표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을 패러디하며 카메오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초반 잦은 NG로 불안해 했던 최수민에게 "엄마, NG는 다 내는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 장면에만 충실해"라고 조언해줬을 뿐 아니라, 촬영장에 커피차까지 보냈다고.
차태현의 형이자 장남인 차지현 역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끝까지 간다' 등을 만든 영화 제작사 대표로 최수민의 '산후조리원' 출연 소식에 매니저부터 구해줬다고. 최수민이 "낯선 사람과 다니는게 불편하다"고 거절했지만, 온 가족이 나서 최수민을 도운 것.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도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수민은 '산후조리원'에서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던 현진(엄지원)의 미래 실사판이기도 했다. 최수민도 마지막회에서 현진에게 "잘 할 수 있어요"라고 조언하는 장면이 "꼭 내 얘기 같았다"고 말했다.
"제가 태현이 낳고 28일 만에 복귀했어요. 현진이 알렉스에게 기회를 뺏기기 싫어 '복귀하겠다'고 한 것처럼, 저도 당시 TBC 간판 프로그램 주인공을 8년 만에 맡게 됐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젖몸살이 오고, 그땐 수유실이나 유축기도 따로 없어서 화장실에서 손으로 유축하고 버리면서 일을 했어요."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최수민이 성우라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 초등학교때부터 꿈꿔왔던 성우가 됐고, "성우밖에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딴 곳에 눈 안돌리고, 일 하는게 행복했다"던 최수민이다. 그랬던 최수민이 50년 만에 성공적인 배우 신고식을 치룬 만큼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산후조리원'을 하면서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됐어요. 큰 아이가'1등 배우 될 수 있어'라고 하길래, '배역달라'고 해놓았어요. 일단 작품 하나는 따 놓았네요.(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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