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피는 물보다 빠르다? … 현장진단기기 속도를 높이는 법!
입력
수정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진단기술 업체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진단기술의 수준을 높여줄 기초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현장진단기기의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연구가 발표돼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최근 다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1년째 지속되며 감염병 진단기술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요, 특히 현장에서 바로 진단이 가능한 현장진단기기(POCT)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미세관 안에서는 점성 높은 피가 더 빠르게 흐를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현장진단기기(POCT)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말라리아, 결핵 등 제한된 감염병에만 사용됐습니다. 대부분의 POCT는 혈액에 포함된 성분의 분포를 파악하는 혈액화학검사나 유전자를 증폭해 균의 유전자를 검출해내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을 이용했습니다.
AIDS의 경우 림프구의 수, 말라리아나 결핵의 경우 병원균의 수를 보고 감염 여부를 결정합니다. 시료(혈액) 당 분석물질(림프구, 병원균 등)이 많아, 적은 시료에서도 쉽게 감염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검사를 시행할 때 온도나 습도, 열과 같은 외부 요인이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미세유체공학을 적용한 POCT가 이런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세유체공학은 아주 얇은 관과 나노 단위의 미세 유체 소자의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나노 크기의 물질을 결합해 의약품을 만들 때에도 미세유체공학이 사용됩니다.
최근 핀란드 알토대 연구진이 의약품 개발과 POCT에 도움이 될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가 미세관에서 더 빨리 흐르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죠. 연구진은 이에 더해 미세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도 함께 개발했습니다.
알토대 연구진은 미세관을 통해 액체를 빠르게 흘려보내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점성이 높은 액체일수록 느리게 흐릅니다. 물보다는 피가, 피보다는 꿀의 움직임이 더 느리죠.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화학물질이든, 진단을 위한 혈액이든 물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1000배까지 점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점성 있는 액체를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유체를 빠르게 흘려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압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압력을 너무 높이면 미세관이 폭발할 위험이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관이 얇아질수록 압력에 약하기 때문에 미세관을 이용하는 진단기기의 경우에는 더더욱 압력을 이용해 유체의 속도를 높일 수는 없습니다.연구진은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초소수성 물질로 관 안쪽을 코팅하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화학물질에는 물과 친한 친수성 물질이 있고, 물을 멀리하는 소수성 물질이 있는데요, 초소수성 물질은 소수성의 성질을 극대화한 물질입니다. 물에 의해 녹이 스는 등 손상을 입는 여러 장비에 초소수성 코팅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미세관을 사용하는 여러 응용 분야에서도 초소수성 코팅은 흔히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비밀은 초소수성 코팅과 액체 사이의 공기 방울
연구진은 내부를 코팅한 미세관에 물과 글리세롤을 각각 흘렸습니다. 글리세롤은 물보다 점성이 1000배 더 큰 물질입니다. 글리세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안전하다고 인정한 화학 물질 중 하나로 비누, 치약, 스킨케어 등 각종 화장품과 의약품의 주원료죠. 당연히 물이 훨씬 빨리 흘러야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글리세롤이 10배 더 빨리 흐른 것입니다.초소수성 물질을 만나 액체의 속도가 빨라지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물과 초소수성 물질은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아래로 빨리 내려가는 것이죠. 하지만 왜 물보다 점성이 높은 글리세롤이 더 빨리 내려간 걸까요.
연구진은 “액체의 표면과 관의 안쪽 표면 사이에 공기 방울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특성은 미세관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는 낮은 액체에 비해 내부 결집력이 강합니다. 때문에 액체 주변에 생긴 공기 방울과 잘 섞이지 않습니다. 반면 내부 결집력이 약한, 점성이 낮은 액체는 공기 방울을 조금씩 파고들어 결국 공기층을 얇게 만듭니다.
액체 주변을 둘러싼 공기층은 미세관에서 액체를 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약하지만 압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에서 두꺼운 공기층이 유지되니 액체를 더 잘 밀어내게 되고, 흐르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죠. 연구진은 이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고 폐쇄된 얇은 미세관에 초소수성 코팅을 했을 때 점성에 따른 액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로빈 라스 알토대 교수는 “폐쇄된 얇은 미세관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액체의 흐름을 발견해 매우 놀랐다”며 “이는 (의약품, 화장품 등) 미세유체역학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우리가 개발한 예측 모델을 유용하게 사용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이번 연구는 혈액이나 여러 화학물질 등 진단과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점성 높은 액체가 흐르는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초소수성 물질 중에서도 미세관에서 액체와 공극을 많이 발생시키는 물질을 찾는 연구도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좋은 결과를 발표하면 미세유체를 이용하는 현장진단기기에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최근 다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1년째 지속되며 감염병 진단기술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요, 특히 현장에서 바로 진단이 가능한 현장진단기기(POCT)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미세관 안에서는 점성 높은 피가 더 빠르게 흐를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현장진단기기(POCT)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말라리아, 결핵 등 제한된 감염병에만 사용됐습니다. 대부분의 POCT는 혈액에 포함된 성분의 분포를 파악하는 혈액화학검사나 유전자를 증폭해 균의 유전자를 검출해내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을 이용했습니다.
AIDS의 경우 림프구의 수, 말라리아나 결핵의 경우 병원균의 수를 보고 감염 여부를 결정합니다. 시료(혈액) 당 분석물질(림프구, 병원균 등)이 많아, 적은 시료에서도 쉽게 감염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검사를 시행할 때 온도나 습도, 열과 같은 외부 요인이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미세유체공학을 적용한 POCT가 이런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세유체공학은 아주 얇은 관과 나노 단위의 미세 유체 소자의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나노 크기의 물질을 결합해 의약품을 만들 때에도 미세유체공학이 사용됩니다.
최근 핀란드 알토대 연구진이 의약품 개발과 POCT에 도움이 될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가 미세관에서 더 빨리 흐르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죠. 연구진은 이에 더해 미세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도 함께 개발했습니다.
알토대 연구진은 미세관을 통해 액체를 빠르게 흘려보내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점성이 높은 액체일수록 느리게 흐릅니다. 물보다는 피가, 피보다는 꿀의 움직임이 더 느리죠.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화학물질이든, 진단을 위한 혈액이든 물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1000배까지 점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점성 있는 액체를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유체를 빠르게 흘려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압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압력을 너무 높이면 미세관이 폭발할 위험이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관이 얇아질수록 압력에 약하기 때문에 미세관을 이용하는 진단기기의 경우에는 더더욱 압력을 이용해 유체의 속도를 높일 수는 없습니다.연구진은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초소수성 물질로 관 안쪽을 코팅하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화학물질에는 물과 친한 친수성 물질이 있고, 물을 멀리하는 소수성 물질이 있는데요, 초소수성 물질은 소수성의 성질을 극대화한 물질입니다. 물에 의해 녹이 스는 등 손상을 입는 여러 장비에 초소수성 코팅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미세관을 사용하는 여러 응용 분야에서도 초소수성 코팅은 흔히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비밀은 초소수성 코팅과 액체 사이의 공기 방울
연구진은 내부를 코팅한 미세관에 물과 글리세롤을 각각 흘렸습니다. 글리세롤은 물보다 점성이 1000배 더 큰 물질입니다. 글리세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안전하다고 인정한 화학 물질 중 하나로 비누, 치약, 스킨케어 등 각종 화장품과 의약품의 주원료죠. 당연히 물이 훨씬 빨리 흘러야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글리세롤이 10배 더 빨리 흐른 것입니다.초소수성 물질을 만나 액체의 속도가 빨라지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물과 초소수성 물질은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아래로 빨리 내려가는 것이죠. 하지만 왜 물보다 점성이 높은 글리세롤이 더 빨리 내려간 걸까요.
연구진은 “액체의 표면과 관의 안쪽 표면 사이에 공기 방울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특성은 미세관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는 낮은 액체에 비해 내부 결집력이 강합니다. 때문에 액체 주변에 생긴 공기 방울과 잘 섞이지 않습니다. 반면 내부 결집력이 약한, 점성이 낮은 액체는 공기 방울을 조금씩 파고들어 결국 공기층을 얇게 만듭니다.
액체 주변을 둘러싼 공기층은 미세관에서 액체를 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약하지만 압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에서 두꺼운 공기층이 유지되니 액체를 더 잘 밀어내게 되고, 흐르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죠. 연구진은 이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고 폐쇄된 얇은 미세관에 초소수성 코팅을 했을 때 점성에 따른 액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로빈 라스 알토대 교수는 “폐쇄된 얇은 미세관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액체의 흐름을 발견해 매우 놀랐다”며 “이는 (의약품, 화장품 등) 미세유체역학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우리가 개발한 예측 모델을 유용하게 사용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이번 연구는 혈액이나 여러 화학물질 등 진단과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점성 높은 액체가 흐르는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초소수성 물질 중에서도 미세관에서 액체와 공극을 많이 발생시키는 물질을 찾는 연구도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좋은 결과를 발표하면 미세유체를 이용하는 현장진단기기에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