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다 지쳐"…코로나19에 AI까지 방역 공무원 '파김치'

소독약 뒤집어쓰고 간식으로 끼니 때우기 일쑤
매몰 현장 목격 '트라우마' 시달리기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얼른 사라지기를 하루하루 기도하는 심정이죠."
7일 전북 부안군의 한 거점소독시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김모 씨의 목소리에는 피로와 근심이 함께 묻어있었다. 그는 이달 초 부안에서 H5N8형 고병원성 AI가 발병하면서 차출됐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뜩이나 힘든 터에 AI까지 겹쳐 죽을 맛"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거센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해 방역과 매몰작업에 매달리는 공무원들의 몸과 정신이 지쳐가고 있다. AI가 침투하고 나면 농민들이 애써 키운 수십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은 살처분 작업과 함께 이동통제초소와 소독시설 운영까지 모두 떠안아야 한다.

전남에서는 지난 5일 영암 육용 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서 발생농장 반경 3km 이내 가금농장을 대상으로 한 살처분 작업이 한창이다.

살처분 대상만 10개 농가 49만3천 마리인 이곳에는 공무원들이 용역업체 직원 150여 명과 함께 동원됐다.
경북에서도 지난 2일 상주시 공성면 산란계 농장에서 AI가 확진돼 방역 당국이 6일까지 살처분과 잔존물 제거 작업을 했다.

방역 당국은 AI 발생 농장 닭과 농장주가 같은 사벌면 농장의 메추리,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 3곳의 닭 등 모두 55만9천 마리를 살처분했다.

살처분 작업에는 상주시 공무원 185명이 용역회사 소속 민간인 200여명과 함께 투입됐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매몰작업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남긴다.

살처분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한다지만 공무원들도 현장을 감독해야 해 이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면 바이러스를 옮길 우려 때문에 사실상 2∼3일간 외부로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에다 방역 요원들은 종일 소독약을 뒤집어쓴 채 외부에서 넣어주는 김밥과 빵 등 간식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전남 영암의 이동통제초소에는 공무원 1천여명이 투입됐다.

애초 발생농장 인근 26곳에만 이동통제초소를 운영하려고 했지만, 선제 대응을 위해 180곳으로 늘리면서 투입 인원이 대폭 늘었다.

이동통제초소에서는 1곳당 6명이 겨울 추위에 변변한 난방시설도 없이 2교대 근무해야 한다.

경북 상주시는 AI 발생 농장 1곳과 방역대 안의 6곳, 상주시와 인접한 시·군 8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초소당 4명 정도를 투입했다.

이들 방역초소 운영 역시 대부분 공무원 몫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기온마저 급격히 떨어지면서 얼어붙은 소독약에 염화칼슘을 다시 뿌려야 해 담당자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공무원들은 녹초가 돼 나와도 밀린 행정업무에 매달려야 한다.

시·군당 몇 명밖에 안 되는 팀원들이 축산물 방역과 식육점 인허가, 부정 축산물 단속, 유기 동물 관리 등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언제까지 퍼질지 모르는 비상시국에 AI까지 덮쳐 당황스럽다"면서 "축산농가는 소모임을 금지하고 철새도래지, 저수지, 농경지 출입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이승형 여운창 김동철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