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캘리포니아의 '보유세 반란'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선에 가려 한국에선 별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미국에선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투표 결과가 있다. 11월 3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보유세 인상안이 부결된 일이다. 이 법안은 진보 진영이 의욕적으로 발의하고 주지사까지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유권자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의 유권자들이 보유세 인상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부터 부동산 ‘시가’가 아니라 ‘구매가’를 기준으로 1%의 재산세(주 정부 세금 기준)를 매겨왔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10만달러에 집을 샀다면 나중에 그 집값이 100만달러로 올라도 보유세는 10만달러를 기준으로 1%인 1000달러가 부과된다. 주 정부가 집값 상승분을 반영하기 위해 매년 보유세를 인상하긴 하지만 인상률은 연간 2% 이내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집주인이 ‘보유세 폭탄’을 맞는 일은 없다.

주민투표서 상가 稅인상 부결

캘리포니아주를 장악한 민주당은 세수 확대를 위해 오래전부터 보유세 체계를 바꾸고 싶어 했다. 노동단체, 사회단체 등 진보 단체가 총대를 멨다. 이들은 300만달러 이상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시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법안을 주민 17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하고 법 통과를 위해 총력전을 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공정하고, 단계적이며, 진작에 처리했어야 할 개혁”이라며 주민발의안을 공개 지지했다. 주거용 부동산이 아닌 고가의 상업용 부동산만 보유세 인상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법 통과가 무난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이 법안을 51.8% 대 48.2%로 부결시켰다. 왜 그랬을까. 우선 건물주와 자영업자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당장 세 부담이 높아지는 건 건물주지만 늘어난 세 부담은 언젠가 건물에 입주한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업용 건물이 아닌 주택 소유자 상당수도 반대표를 던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집주인들은 이번 조치가 2막극 중 1막이란 걸 알아차렸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상업용 부동산이 타깃이지만 다음 차례는 주거용 부동산이 될 것이란 걸 눈치챈 유권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밥 슈럼 전 민주당 전략가는 뉴욕타임스에 “민주당이 너무 멀리 나갔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진보 성향이긴 하지만 보유세 인상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주택소유자·자영업자도 반대

캘리포니아주 얘기를 꺼낸 건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정책과 관련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집값을 잡기 위해 보유세를 급격히 올리고 있다. 한국의 보유세 부담이 선진국보다 낮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상은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보유세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 부작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선 올해 보유세가 작년보다 30~40% 이상 뛴 데 이어 내년에도 가파른 상승이 예상되는 곳이 많다. 집값 상승에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공시지가 상향 등이 동시에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엔 다주택자에게 보유세 부담이 집중되겠지만 결국엔 1주택자도 피해를 입고 세입자에게도 그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보유세가 증가한 만큼 월세를 늘려 받겠다”는 다주택자가 늘고 전·월세 가격이 뛰는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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