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왕자? 복수를 노리는 공주가 '햄릿'이다

국립극단, 고전 캐릭터 재창조
12년 만에 연극 '햄릿' 공연
고뇌하는 왕자가 아니다. 과감하게 복수를 꿈꾸는 공주가 ‘햄릿’이 된다. 국립극단이 익숙한 고전의 캐릭터를 재탄생시켜 12년 만에 연극 ‘햄릿’(사진)을 선보인다. 이 공연은 오는 17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70주년을 맞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공연을 올리지 못한 국립극단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여는 공연이다.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설문조사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작품이기도 하다.

국립극단은 가장 익숙하고 오랜 고전을 2020년 버전으로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햄릿의 성별이다. 원작에서 남성이었던 왕위 계승자 햄릿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성별은 바뀌었지만 햄릿 공주는 동일하게 왕위 계승자로 나온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검투에도 능하다.정진새 작가는 “엘시노어성에 갇혀버린 고뇌자가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복수자를 그린다”며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악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부새롬 연출은 “햄릿이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햄릿의 상대역인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바뀐다. 원작에 등장하는 유럽 왕국의 딱딱한 예법과 시적인 대사들도 대거 수정했다. 기성세대인 클로디어스, 거트루드와 젊은 세대인 햄릿, 오필리어 간 대결 구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은 이들의 갈등을 통해 서로의 가치관을 문제 삼으며 대척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최근 연극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부 연출과 정 작가의 의기투합도 화제다. 부 연출은 연극 ‘마우스피스’ ‘썬샤인의 전사들’을 통해 동시대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브레인 컨트롤’ ‘액트리스 원’등을 올렸던 정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극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신동 미술감독도 참여한다. 이번 공연에선 텅 빈 무대에 흙, 바람, 비를 흩뿌리며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일깨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