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 "코로나보다 빅테크가 더 큰 위협…디지털 투자 늘릴 것"

국내 은행장 15명에게 '2021 사업계획·전망' 물어보니

내년 말까지 코로나 후폭풍
늘어난 대출 부실화 우려
충당금 적립 등 리스크 관리 강화
국내 은행 15곳의 은행장이 내년도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빅테크(대형 IT기업)의 공습’을 꼽았다.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은 최소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장들은 내년 위기의 파도를 넘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디지털’ ‘리스크 관리 강화’ ‘비이자 이익 확대’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빅테크와의 생존 경쟁 본격화”

7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15개 은행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경영의 가장 큰 위협 요소’를 묻는 질문(2개까지 복수 응답)에 가장 많은 응답자(14명)가 ‘빅테크 및 핀테크와의 경쟁’을 지목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위협 요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이보다 적은 12명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SC제일 씨티 부산 경남 대구 전북 광주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15개 은행장이 참여했다.

은행장들은 내년 ‘빅테크·코로나19발(發) 리스크’가 은행권을 다각도로 압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데이터와 종합지급지시결제업이 허용되면서 빅테크 업체가 사실상 예금과 대출을 제외한 은행의 모든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코로나19 이후 금융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이 더욱 빨라졌다”며 “핀테크가 점점 영역을 확대하고, 비금융 빅테크·플랫폼도 지급결제와 송금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서비스를 넓히는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경쟁 심화로 업권 내 수익성이 악화할 게 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 등에 따른 후유증도 걱정거리로 꼽혔다. 손병환 농협은행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충격이 본격화하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규모의 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은행장들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코로나 충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여신 건전성 악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할 것”이라며 “투자금융 등 비이자 부문에서 핵심 성장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데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리스크 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에 기초한 신용 평가 모형을 더욱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채용·구조조정도 ‘디지털’이 화두

은행장들은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를 생존 키워드로 제시했다. 은행 15곳 중 11곳이 디지털 부문 투자를 올해보다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리스크 관리 말고도 프라이빗뱅킹(PB), 자산관리(WM) 정상화를 통한 비이자 부문 강화도 주요 전략으로 꼽혔다.

점포 효율화와 인력 채용에서도 ‘디지털’이 ‘최우선 가치’라는 답변이 많았다. 올 들어 가속화한 지점 통·폐합 및 축소 트렌드도 지속될 전망이다. 내년 지점 축소 및 확대 계획을 묻는 말에 8명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고, 4명은 ‘더 줄이겠다’고 했다. 늘린다는 답은 없었다. 신한·하나은행장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점포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한 은행장들도 “거의 모든 은행 업무를 모바일로도 할 수 있게 돼 대면 채널을 혁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반대로 ‘디지털 경력직’에 대한 선호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 행장은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디지털 인력 수시 채용은 늘릴 것”이라고 했다.

사모펀드 사태 극복 총력

은행장들은 잇단 사모펀드 사태로 실추된 PB 부문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진 행장은 “PB 전용 디지털 플랫폼을 신설하고, 모든 고객의 자산관리 수준을 높이는 맞춤형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 행장은 “자산 관리에도 비대면화가 트렌드”라며 “소비자 주도의 셀프 비대면 자산관리 시스템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손 행장은 “고객 보호, 상품 판매, 비대면 대응 등 자산 관리 전 분야에 디지털을 적극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은행장들은 공통적으로 코로나19 이후 강조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허 행장은 “ESG 경영은 시대적 트렌드”라고 했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ESG 분야에 투자할 기회를 주면서 은행의 ‘선한 영향력’을 높이는 ‘ESG 셀렉트 펀드’를 내년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황윤철 경남은행장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ESG 경영체계를 마련하고, 지역상생 활동을 강화하는 게 은행의 덕목”이라고 했다.

김대훈/정소람/오현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