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1%에 '연금 머니무브'…"증권사 ETF로 갈아타 노후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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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사서 증권사로 이동하는 '연금개미'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56)는 3년 후 퇴직할 예정이다. 이미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상태다. 은퇴를 대비해 10년 전 금리연동형 연금보험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5% 수준이던 공시이율이 최근 2%까지 떨어졌다. 고민하던 A씨는 증권사 연금저축계좌에서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보험사에 있던 연금보험을 증권사 연금저축계좌로 옮겨 ‘KODEX200’에 투자했다. 수익률은 몇 달 새 10%를 훌쩍 넘었다.
"연금거지는 되기 싫다"
초저금리·증시 활황 맞물려
개인·퇴직연금 자금 줄줄이 이동
작년 연금저축펀드 수익률 10%
연금보험 수익률 고작 1%
A씨와 같은 ‘연금개미’가 급증하고 있다. 그대로 놔두면 원금은 보장되지만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에 투자에 나선 이들이다. 증권사의 호객 행위로 여겨졌던 ‘연금도 투자시대’라는 말이 저금리와 주식 붐이 맞물리며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결과다. 이를 반영하듯 연금계좌 이전 속도는 올 들어 가속이 붙었다. 국내 4대 증권사로 이동한 은행·보험사의 계좌만 1조원(3분기 기준)을 넘어섰다. 개인연금은 물론 퇴직연금까지 줄줄이 둥지를 옮기고 있다.수고로움을 무릅쓰고 계좌 이전에 나선 것은 수익률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저금리 영향으로 지난해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1.77%에 불과했다. 반면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2018년(-3.82%) 대비 10.2%포인트 오른 6.38%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올해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높고,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저조한 것도 이 같은 영향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올해 3분기 말까지 4.17%를 기록했다. 주식에 많이 투자하는 연금저축펀드의 수익률과 안정적인 채권 등에 투자하는 연금저축신탁, 연금저축보험과의 격차도 상당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금저축펀드 수익률은 10.5%였다. 이에 비해 연금저축신탁(2.34%), 연금저축보험(1.84%)은 여기에 훨씬 못 미쳤다.
ETF 종잣돈 연금으로
노후를 위한 저축으로 여겨지던 연금이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계좌 이전 요인으로 꼽힌다. 올 들어 주식 투자로 재미를 본 자영업자 B씨(43)는 3년 전 은행에서 가입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증권사로 옮겼다.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ETF 등에 투자할 경우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가만히 있다가 연금 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올해 연금 머니무브(자금 이동)를 촉진한 또 다른 요인은 ETF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1월 2일) 1조8000억원 수준이던 ETF 거래량은 이달 들어 4조8000억원까지 급증했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본부장은 “저금리 시대 투자에 대한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종잣돈이 많지 않은 이들이 연금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원금 손실 우려가 있지만 개별 종목보다 덜 위험하고 수수료는 저렴한 ETF를 많이 선택한다”고 전했다. ETF에 투자하려면 증권사로 계좌를 옮겨야 한다. 현재 은행·보험사와 달리 증권사 연금계좌에선 개별 주식과 레버리지·인버스 ETF를 제외한 대부분 펀드와 ETF에 투자가 가능하다.
계좌 이전 간소화도 한몫
연금계좌 이전 절차가 간소해진 것도 머니무브에 힘을 보탰다. 연금저축,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모든 연금계좌를 갈아탈 때 계좌를 옮길 금융사 한 곳만 방문하면 기존 계좌를 원하는 금융사로 옮길 수 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최대 7개에서 1~2개로 대폭 축소됐다. 그간 금융사별 신청 서식과 구비해야 하는 서류가 다르고 금융사의 잦은 수정·보완 요구로 이전이 지연돼 기업 및 근로자의 불만이 많았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는 2% 수익률밖에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는 증권사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이동하게 되는 다양한 요인이 마련돼 있다”며 “투자자로서는 이런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박재원/전범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