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뛰어들자…틈새가전 中企 벌벌?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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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가전 '뜻밖의 동반성장'차량이나 책상에 설치하는 소형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클레어는 요즘 잔칫집 분위기다. 올해 1~11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어서다. 5년 전 1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이 회사 매출은 올해 2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대기업 가세로 소비자 인식 개선"
식기세척기·LED 마스크 판 커져
파세코·셀리턴 등 中企 매출 급증
대기업 '포식자' 통념 깼다
제품 홍보효과 中企도 누리게 돼
의류관리기처럼 新시장 개척도
회사 임직원들에게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묻자 “대기업 덕분”이란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이우헌 클레어 대표는 “지난해 중순부터 공기청정기업계 매출이 일제히 치솟고 있다”며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소비자들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식기세척기 시장 급성장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황소개구리’나 ‘포식자’로 묘사된다. 중소기업의 시장을 빼앗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엔 정반대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공기청정기 시장은 대기업이 판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8년 250만 대 수준이던 국내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올해 400만 대로 2년 만에 60%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 등이 시장에 가세하면서 시장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는 분석이다.식기세척기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 분야의 터줏대감 중 하나인 파세코는 지난달 식기세척기 누적 판매대수 100만 대를 돌파했다. 지난 4월 70만 대를 돌파한 뒤 7개월 만에 30만 대를 더 파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식기세척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롯데하이마트 등 가전 유통업체들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 진출을 반기고 있다. 대기업이 마케팅에 나서면서 관련 제품 매출이 일제히 오른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비스포크 식기세척기를 출시하면서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과 체험행사를 벌였다. ‘과실’을 누린 것은 삼성전자만이 아니었다. 올해 1~11월 롯데하이마트에서 식기세척기 판매는 전년 대비 160% 늘었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대기업 프로모션을 보고 방문한 소비자가 가격 등을 따져본 뒤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며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싸우기 위해 품질과 서비스에 더 공을 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만든다’ 소비자 신뢰 얻어
‘대기업 메기효과’에 대한 이견도 있다. 이미 커지고 있었던 시장에 대기업이 참여한 것을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관련 업종 중소기업들의 얘기는 다르다. 대기업 진출 전과 후의 시장 성장세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설명이다.LED마스크 시장이 대표적이다. 2017년 LG전자가 ‘LG 프라엘’을 출시하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클라인앤컴퍼니 조사 결과, 2018년 국내 뷰티기기 시장은 전년 대비 61% 성장했다. 이전까지의 성장률은 연평균 13~17% 선에 그쳤다.뷰티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의 매출도 ‘퀀텀 점프’했다. LED마스크 업체 셀리턴의 2016년 매출은 2억원에 불과했지만 LG전자가 가세한 첫해인 2017년엔 39억원, 이듬해인 2018년엔 6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매출 규모가 1285억원까지 늘었다. 셀리턴 관계자는 “중소기업만 제품을 만들 때는 LED마스크라는 제품군 자체에 의구심을 갖는 소비자가 상당했다”며 “대기업이 가세한 뒤엔 LED로 피부를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 자체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의류관리기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군은 대기업이 시장 개척자의 역할을 맡는다. 2018년 코웨이가 의류관리기 시장에 뛰어든 데 이어 신성이엔지도 내년 초 빌트인 형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의류관리기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고 보고 빌트인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소 가전업체들은 삼성과 LG가 출시를 앞둔 식물재배기, 신발관리기, 미니냉장고 등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지역 상권이 살아나 인근 전통시장과 소매점 매출까지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시장이 소비자 신뢰를 얻고 성장하는 데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