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토론해보라"는 민주당, 국민의힘 허 찔렸나

'野 존중' 앞세우며 뒤에선 표계산…동력 떨어진 野는 난감

더불어민주당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 토론)를 강제 종료하지 않기로 한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야당에 대한 존중'을 그 이유로 든다.

홍정민 원내대변인은 "필리버스터 법안에 대해 의사표시를 보장해달라는 야당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여당의 쟁점 법안 단독 처리를 '입법 독주'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야당의 자유 발언조차 위력으로 가로막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날 제1 목표였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무사히 통과시켰고, 나머지 법안도 별 어려움 없이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느긋한 쪽은 민주당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치밀한 표 계산 끝에 무리한 강수를 피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를 24시간 시한부로 강제 종료하려면 의원 180명의 무기명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현재 원내 구도로 볼 때 이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석은 174석이지만 구속 수감된 정정순 의원을 빼면 사실상 173석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주당을 탈당한 김홍걸 이상직 의원, 여권 성향의 무소속 이용호 양정숙 의원까지 더하면 178석이 확보된다.

여기에 열린민주당 3명을 추가하면 180석을 넘기게 되지만, 공수처법 개정안 투표에 불참한 조응천 의원처럼 내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는 데다 정의당(6명), 기본소득당(1명), 시대전환(1명) 등 군소 야당이 100% 도와줄지도 알 수 없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80석이 찰랑찰랑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오히려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날 정국 핵심이었던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불과 3시간밖에 필리버스터를 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끝장 토론에 불을 붙여본들 효과가 크지 않고 당내 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떻게든 공수처법 개정안 상정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결정 뒤로 미루고, 우선 다른 쟁점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했더라면 반정부 여론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뒤늦게 제기된다.

이렇게 된 바에야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자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고개를 들어 이번 주말을 넘길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주당이 토론권 다 보장해줬다고 하면서 훌러덩 법안 통과시키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연합뉴스